본문 바로가기

역대 영화제/한국의 여배우들

외롭게 지고 만 한국영화의 단골 ‘어머니’, 황정순

외롭게 지고 만 한국영화의 단골 '어머니', 황정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여성신문이 함께하는 "그리운 여배우" 5탄 황정순

 


한국 영화사에는 대단한 여배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업적은 폄하되거나 잊혀져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적다.

50년대 말부터 109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수많은 여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온 김수용 감독의 인간적인 시선과 생생한 기억으로 여배들의 자취를 되살려본다. 여성신문사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그리운 여배우' 연재가 우리나라 여배우사의 귀중하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01

     

02

▲영화 '갯마을'에 출연한 배우 황정순. ©한국영상자료원

 영화 '갯마을'에 출연한 배우 황정순. ©한국영상자료원

 

 

 

 

황정순은 꽃다운 18세에 처음 영화에 출연했는데, 극장에 가보았더니 모두 편집에서 삭제되어 모습이 없었다고 나에게 말한 바 있다. 그때 세 사람의 처녀가 어떤 극단에서 연기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황정순, 최경순(최은희), 이어순이(백성희)를 삼순이라고 불렀다. 삼순이는 서로 경쟁심이 강하고 정열적이어서 일사천리 자기 고집만을 따라갔다. 그래서 지금은 80대 한국 여배우의 가장 확실한 자리에 앉아있다.

왜 편집에서 잘려나갔을까?

 

◀ 영화 '굴비'에 출연한 배우 황정순. ©한국영상자료원

 

 

 

 

   일본영화 <그대와 나>는 군용열차에 병정들을 가득 싣고 만주로 달려가는 도중 경성역에서 3분간 정차한다. 이때 조선처녀들이 꽃다발을 증정하느라 아우성이다. 황정순도 뽑혔다. 카메라는 먼저 병정들이 꽃을 받는 장면을 찍고 기차는 출발한다. 그리고 처녀들을 찍게 될 때는 아무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며 연기를 해야 한다

 


이때 황정순은 무의식적으로 여러 번 카메라 렌즈를 훔쳐보았다. 렌즈를 본다는 것은 관객과 눈이 마주치는 것, 영화의 이야기 속에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어떤 영화도 관객은 객석에 편안히 앉아 남의 이야기를 즐기게 되어 있는데 이건 말이 안 된다.

 


시선 처리도 안되던 황정순이 연기파 여배우로 내 카메라 앞에 선 것은 그녀가 30대 중반인 1963년 여름이었다. <혈맥>은 황정순에게 있어서도 감독에게도 기억할 만한 작품이다. 그 해 대종상은 작품상을 위시해서 여우주연상 등 5개를 이 영화에 수상하며 감독은 빈손이었다. 얼마 전 40여 년 만에 필름이 발견되어 복원, 시사를 했는데 <혈맥>이 김수용의 대표작이라고 평론가들은 말하기도 했다. 하여튼 젊은 날의 황정순, (엄앵란)에게 소리를 가르쳐 술집에 팔려는 억척스럽고 눈물겨운 장면들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 후 한국영화의 어머니 역 단골이 된 그녀는 <갯마을>, <산불> 등 줄줄이 출연하여 감독과 친분을 쌓았다. 황정순은 여러 개의 작품에 겹치기 출연하며 연중 촬영 현장에서 살았고, 남편 이영복과 어린 3남매(전실 자식)를 극진히 돌봤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가족은 모두 떠나가고 삼청공원 입구의 외로운 집에서 강아지 일곱 마리와 살았다. 나는 그녀에게 위로의 편지와 케이크를 사가지고 갔는데 문이 잠겨 문 앞에 놓고 온 일이 있다. 그런데 청천벽력, 작년 겨울 황정순은 휠체어에 실려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이 되어 우리들 가슴을 무너지게 했다. 변호사 말은 유산 싸움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녀가 예술원에서의 똑똑한 언동으로 보아 절대 정신병 환자가 아니라는 진정서를 썼다.

 

 

  나는 황정순의 연기력을 인정하기 때문에 가끔 파격적인 배역을 그녀에게 주었다. 양장에 하이힐을 콩콩 구르며 부산하던 <어느 여배우의 고백>, 본처 조미령에게 폭행당하는 김승호의 온순한 첩 <네가 잘나 일색이냐>, 남정임이 데뷔한 <유정>의 기숙사 노처녀 사감선생

그럴 때면 더욱 열심히 배역을 파고들며 기뻐하던 당대의 한국 여배우는 지난 2 17일 아주 외롭게 생을 마쳤다

인간성으로 보나 여배우로서의 삶에서 황정순은 항상 빛나고 있었지만 외로움은 따라다녔다.  

▲ 영화 '혈맥'에 출연한 배우 황정순. ©한국영상자료원

   

 

글: 김수용 감독

 

 

황정순은 1925-2014년, 경기도 시흥 출생. 인천 영화학당 졸업 후, 1940년 극단 청준좌, 호화선, 성군 등에서 연기 생활 시작, 1943년 <그대와 나>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에 데뷔. 영화보다 연극에 주력하며 극단 자유극장, 신협에서 활동, 50년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인 영화활동을 시작, 후진양성을 위해 72년 '황정순 장학회'를 설립해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원.

 

김수용 감독 1929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50년 서울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한국전쟁에 참전. 1958년 육군 대위로 예편 후 ‘공처가’로 영화감독 데뷔. 이후 50여년 간 109편의 영화를 만듦. 1984년 몬트리올 세계영화제 심사위원, 1985년 동경 국제영화제, 아세아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제33회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국민원로회의 의원 등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