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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화제/한국의 여배우들

어느 각도에서 봐도 완벽한 얼굴을 가진 배우, 주증녀

어느 각도에서 봐도 완벽한 얼굴을 가진 배우, 주증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여성신문이 함께하는 "그리운 여배우" 6탄 주증녀

 

한국 영화사에는 대단한 여배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업적은 폄하되거나 잊혀져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적다. 50년대 말부터 109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수많은 여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온 김수용 감독의 인간적인 시선과 생생한 기억으로 여배들의 자취를 되살려본다. 여성신문사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그리운 여배우' 연재가 우리나라 여배우사의 귀중하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문정숙은 두 살 위 주증녀를 철이 엄마라고 불렀다. 중학교 때 부모의 이혼으로 철이는 아버지 허영 손에 컸다. 나는 그 아이를 세 살 때 봤다. 고향 안성에서 광복을 맞은 우리들은 극장을 빌려 연극을 하게 됐는데, 미진한 데가 많아 지방 공연으로 내려온 극단을 찾아가 자문을 얻기로 했다. 조각가 김세중과 내가 여관으로 찾아갔을 때 주증녀는 철이를 업고 있었다. 정득순 단장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지금은 다 잊었다. 그 후 20년쯤 지나 내 카메라 앞에 선 주증녀에게 가슴 설레며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는 기억에 없다고 딱 잡아뗐다.

 

 

▲ 영화 '산불'에 출연한 배우 주증녀(왼쪽). ©한국영상자료원

 

    그때 주증녀는 김기영의 <>로 주가가 올라 있었다. 그 감독은 주증녀를 나에게 이렇게 예찬하고 있었다. “상하좌우 어느 각도에서 카메라를 대어도 완벽한 얼굴을 가진 여배우”라고. “감독님, 전 이쪽 얼굴은 자신이 없어요. 이쪽으로만 찍어주세요” 하는 배우가 있던 시절이다.

 

  주증녀의 젊은 남편 역은 김진규가 많이 했는데, 1964년 신봉승의 방송극 <월급봉투>에서 김승호와 짝을 지워주었다. 젊은 아내를 얻은 것처럼 좋아하던 영감은 자기도 젊은 연기를 해야 한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직장에서 쫓겨난 김승호의 비극은 할아버지처럼 공허하게 끝이 났는데, 그것을 소화하는 아내는 아직 관록이 붙지 않았다. 1967년 남해에서 찍은 천승세의 희곡 <만선>에서 주증녀는 다시 김승호의 아내가 된다. 나는 전철을 피하기 위해 주증녀의 미모를 어김없이 가난한 갯가 아낙네로 분장시켰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부부는 심한 몸싸움을 하게 되는데 두 사람은 그것을 잘 소화했다.

 

  여배우는 꼭 젊고 예뻐야 한다는 통설은 가끔 빗나간다. 그러나 <산불>에서 신영균과 주증녀의 정사신을 본 사람은 여배우가 좀 젊었으면 하고 아쉬워했다. 10년 후 조정래의 단편 <황토>라는 영화에서 주증녀는 김지미의 어머니 역을 할 만큼 늙어 있었다. 그것은 배역뿐만 아니라 여배우의 사생활에서도 이혼, 재혼, 출산 등으로 지쳐 있었다. 그때 주증녀는 우리 집에 와 불교 신도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녀를 홍은동 백련사로 데리고 갔다. 절에서 기도하고 안정을 찾으니 출연도 많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기뻐했다.

 

  그런데 그때 문정숙이 주증녀처럼 가정이 깨지고 새 남자를 만나 힘들고도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주증녀와 내가 문정숙의 초청으로 신당동 집으로 찾아갔을 때 새 남자가 나타났는데, 그는 이만희 감독이었다. 우리는 무작정 술을 마셨다. 말이 필요 없었다. 감독과 여배우가 수많은 작품을 같이 하다가 정이 들었을 텐데 무슨 변명이 필요하겠는가. 여배우들은 감독보다 더 취했다. 밖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마 그날 밤이 크리스마스이브였던 것 같다. 함경도에서 내려온 주증녀, 평안도에서 내려온 문정숙은 남쪽의 두 남자를 놓고 끝없이 신세타령을 늘어놨었다.

 

  2014년 벽두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이적인 발표 하나를 했다. 지난 90년간 제작된 모든 한국 영화 중에서 100편을 선정했는데 1위로 <하녀>가 선정됐다고 했다. 60여 명의 전문가들이 선정을 했다는데,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권위를 가진 사람들인지 몰라도 일단 결정된 것은 현실이며 세인이 납득하든 안 하든 하나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하녀’가 얼마나 재미 있는 영화인지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그런 자리에 오를 작품인가 의아스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 주증녀가 그 작품의 주연을 맡고 있으니 모든 것을 다 인정하고 물러설 생각이다.

  ▲ 배우 주증녀(오른쪽). ©한국영상자료원

  

글: 김수용 감독

 

 

주증녀 1926-1980년, 함경남도 여흥 출생. 함남공립고등여학교 졸업 후, 18세에 집을 나와 극단 고협에서 연극배우 활동을 시작. 같은 해 연극배우 허영과 결혼. 1949년 '조국의 어머니'로 영화에 처음 출연해서 주목받기 시작. 1950~60년대 정상의 인기를 구가, 1970년대 중반 뇌종양에 걸려 병상에 눕기 전까지 400여 편의 영화에 출연. 

 

김수용 감독 1929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50년 서울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한국전쟁에 참전. 1958년 육군 대위로 예편 후 ‘공처가’로 영화감독 데뷔. 이후 50여년 간 109편의 영화를 만듦. 1984년 몬트리올 세계영화제 심사위원, 1985년 동경 국제영화제, 아세아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제33회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국민원로회의 의원 등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