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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화제/한국의 여배우들

눈빛이 강렬했던 품위 있는 배우, 최은희

눈빛이 강렬했던 품위 있는 배우, 최은희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여성신문이 함께하는 "그리운 여배우" 8탄 최은희 

 

한국 영화사에는 대단한 여배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업적은 폄하되거나 잊혀져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적다. 50년대 말부터 109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수많은 여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온 김수용 감독의 인간적인 시선과 생생한 기억으로 여배들의 자취를 되살려본다. 여성신문사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그리운 여배우' 연재가 우리나라 여배우사의 귀중하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했던 복혜숙, 석금성, 전옥, 한은진, 황정순, 주증녀, 문정숙은 유명을 달리한 여배우들이었다. 이제부터는 생존해 있어도 거의 활동이 없는 사람들을 찾아간다. 그들은 한때 은막을 주름잡았기 때문에 더욱 고즈넉한 현실을 살고 있을 것이다.

 

 

 

  “최은희 선생, 안녕하세요?” 했더니, 그녀의 휴대전화는 “어마, 김 감독” 하고 반가운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녀가 있는 곳은 입원실이었다. “어디가 아프신데요?” “신장이 나빠졌어요.” 내가 최은희씨를 처음 본 것은 지난 세기 40년대 ‘마음의 고향’이었다. 산사에서 동승에게 마음을 빼앗긴 젊은 미망인. 그녀의 소복은 그때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언제쯤 퇴원하시는데요?” 최은희씨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영화 <상록수>의 배우 최은희. ©한국영상자료원

 

 

 

  몇 년 전 신상옥 감독의 빈소에서 그녀는 몹시 지쳐 있었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운 듯 동석했던 신영균이 갑자기 영화 제작을 제의했다. 제작비는 자기가 책임지겠으니 최 여사가 출연하는 작품을 찾아달라고. 나는 그 자리에 같이 있던 김모 장관에게 증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스토리를 찾기 시작했다. 두 달 후쯤 윤흥길 소설 ‘무지개는 언제 뜨나요’를 시나리오로 구성했더니 신영균은 자기도 출연하겠다고 했다. 나는 두 사람이 한 작품에 출연하는 것은 흥행 면에서 힘이 드니, 남자 영화는 따로 만들기로 하고 고은의 ‘만월’이란 소설을 골랐다. 두 작품은 모두 윤리·도덕 앞에서 무너지려는 고령자의 인간적인 비애가 그려진다. 시나리오를 본 두 배우는 반응이 달랐다. 여배우는 의욕이 생긴다고 했는데, 신영균은 “내가 그런 역할을 어떻게 하니” 하면서 후퇴했다. 사람들은 그런 영화가 보고 싶다고 했지만 투자의 길은 막히고 최은희는 휠체어를 타게 됐다.

 

  인생유전이 바로 최은희라는 여배우의 생애였다고 해도 그녀의 행복했던 시절은 아무래도 장충체육관 앞 정원이 넓은 이층집 시대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어느 날 그녀는 예고도 없이 남편과 근처에 사는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때 작은 스피츠 한 마리를 안고 왔는데 우리집 대청마루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앙증맞았다. 마당에 쇠줄로 묶어 놓은 우리집 송아지만 한 포인터는 개 냄새를 맡고 난동을 부렸다. 강아지 이름은 ‘옥이’. 신상옥 이름을 연상시켰는데, 감독은 집을 둘러보더니 “야, 너희 집에서 촬영 좀 하자”고 했다. 결국 <로맨스 그레이>를 찍게 되고 최은희의 희망대로 우리 집 개와 옥이를 바꾸게 되어 우리는 개 사돈이 되어버렸다.

 

 

   영화 <로맨스 그레이>의 배우 최은희. ©한국영상자료원

 

  최은희는 <돌아온 사나이>에 이어 <날개부인>등을 같이 작업했는데 우선 여배우가 품위가 있다. 얼굴 화장은 한 시간쯤 걸렸는데, 대사를 모두 암송하고 있어 프롬프터가 필요 없었다. 눈빛이 강렬하고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아 차가워 보인다. 작품에 대한 해석도 깊었다. 나는 그때 부산에서 촬영 중에 최은희 납북 뉴스를 듣고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신상옥 때는 밤잠이 달아났다. 혼자 두 아이를 기르던 오수미. 나는 그녀가 녹음실에 올 때 아이들이 따라와 복도에서 노는 것을 봤다. 어쩌면 그렇게 아범을 닮았을까. 지금은 미국 폴리스맨이 됐다고 한다.

 

  나는 지금은 잔잔해졌지만 두 사람이 북에서 뿌린 루머를 다 믿지 않는다. 다만 최은희가 파티장에서 성혜림이 차린 상을 뒤집어놨다는 이야기는 실감이 간다. 주량은 적지만 지금도 만남에서 즐기는 술. 신상옥을 사랑하는 최은희의 가슴은 뜨겁다. 바라건대 건강을 되찾아 당대의 최고 여배우의 대표작 한 편을 꼭 찍고 싶다. 

   

   

글: 김수용 감독

 

최은희 1928년 경기도 성남 출생. 배우 문정복의 권유로 극단 아랑에 입단. 열여덞에 '청춘극장' 하녀역을 시작으로 조선연극회, 토월회, 극협, 신협에서 활동하다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서>(1947)로 영화계에 첫발을 들여놓음. 이후 12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 1965년 국내 세 번째 여성 감독으로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을 연출. 

 

김수용 감독 1929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50년 서울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한국전쟁에 참전. 1958년 육군 대위로 예편 후 ‘공처가’로 영화감독 데뷔. 이후 50여년 간 109편의 영화를 만듦. 1984년 몬트리올 세계영화제 심사위원, 1985년 동경 국제영화제, 아세아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제33회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국민원로회의 의원 등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