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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화제/한국의 여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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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역할이든 완전히 소화하는 연기파 배우, 김지미 어떤 역할이든 완전히 소화하는 연기파 배우, 김지미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여성신문이 함께하는 "그리운 여배우" 11탄 김지미 한국 영화사에는 대단한 여배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업적은 폄하되거나 잊혀져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적다. 50년대 말부터 109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수많은 여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온 김수용 감독의 인간적인 시선과 생생한 기억으로 여배들의 자취를 되살려본다. 여성신문사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그리운 여배우' 연재가 우리나라 여배우사의 귀중하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거주지를 미국 서부로 옮긴 김지미는 가끔 서울을 방문하는데, 지난 번에 왔을 때는 김기덕 감독과 나를 H 호텔로 초대했다. 점심 때라 식당은 거의 만석이었는데 사람들은 돌연히 나타난..
천의 얼굴로 스크린을 홀리다, 도금봉 천의 얼굴로 스크린을 홀리다, 도금봉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여성신문이 함께하는 "그리운 여배우" 12탄 도금봉 한국 영화사에는 대단한 여배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업적은 폄하되거나 잊혀져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적다. 50년대 말부터 109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수많은 여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온 김수용 감독의 인간적인 시선과 생생한 기억으로 여배들의 자취를 되살려본다. 여성신문사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그리운 여배우' 연재가 우리나라 여배우사의 귀중하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삼청공원 입구에 유명한 복집이 있었는데 옛날 악극단 배우가 운영하고 있었다. 도금봉과 그 사이엔 아들 쌍둥이가 있었는데 나는 본 일이 없었다. 다만 영화 일이 뜸해진 후 오랜 별거생활을 끝내고 남..
청초했던 여대생 무드는 간 데 없네, 엄앵란 청초했던 여대생 무드는 간 데 없네, 엄앵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여성신문이 함께하는 "그리운 여배우" 10탄 엄앵란 한국 영화사에는 대단한 여배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업적은 폄하되거나 잊혀져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적다. 50년대 말부터 109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수많은 여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온 김수용 감독의 인간적인 시선과 생생한 기억으로 여배들의 자취를 되살려본다. 여성신문사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그리운 여배우' 연재가 우리나라 여배우사의 귀중하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지난주 엄앵란을 영상자료원에서 만났다. 그곳에서 신상옥 감독 8주기 행사가 있었는데, 80여 명의 사람들 중에 여배우는 한 사람뿐이었다. “글쎄, 나를 영화인 취급을 하지 않아요. 부산영화..
아름답기에 더욱 처절했던 연기자, 조미령 아름답기에 더욱 처절했던 연기자, 조미령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여성신문이 함께하는 "그리운 여배우" 9탄 조미령 한국 영화사에는 대단한 여배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업적은 폄하되거나 잊혀져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적다. 50년대 말부터 109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수많은 여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온 김수용 감독의 인간적인 시선과 생생한 기억으로 여배들의 자취를 되살려본다. 여성신문사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그리운 여배우' 연재가 우리나라 여배우사의 귀중하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조미령은 체구가 작은 편이어서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과의 키 밸런스가 맞지 않아 카메라맨들이 고심했다. 에서는 이도령의 이민, 향단의 노경희가 장신이기도 했지만 촬영을 맡은 유장산은 작은 상자를 ..
눈빛이 강렬했던 품위 있는 배우, 최은희 눈빛이 강렬했던 품위 있는 배우, 최은희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여성신문이 함께하는 "그리운 여배우" 8탄 최은희 한국 영화사에는 대단한 여배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업적은 폄하되거나 잊혀져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적다. 50년대 말부터 109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수많은 여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온 김수용 감독의 인간적인 시선과 생생한 기억으로 여배들의 자취를 되살려본다. 여성신문사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그리운 여배우' 연재가 우리나라 여배우사의 귀중하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했던 복혜숙, 석금성, 전옥, 한은진, 황정순, 주증녀, 문정숙은 유명을 달리한 여배우들이었다. 이제부터는 생존해 있어도 거의 활동이 없는 사람들을 찾아간다. 그들은 한때 은막을 주..
연극배우에서 45년간의 은막의 주연까지, 문정숙 연극배우에서 45년간의 은막의 주연까지, 문정숙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여성신문이 함께하는 "그리운 여배우" 7탄 문정숙 한국 영화사에는 대단한 여배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업적은 폄하되거나 잊혀져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적다. 50년대 말부터 109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수많은 여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온 김수용 감독의 인간적인 시선과 생생한 기억으로 여배들의 자취를 되살려본다. 여성신문사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그리운 여배우' 연재가 우리나라 여배우사의 귀중하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 김수용 감독 에서의 배우 문정숙(오른쪽). ©한국영상자료원 ▲ 영화 에 출연중인 배우 문정숙(왼쪽). ©한국영상자료원(조희문기증) 장민기는 문정숙의 외아들이다. 지금 60세쯤 되었을까..
어느 각도에서 봐도 완벽한 얼굴을 가진 배우, 주증녀 어느 각도에서 봐도 완벽한 얼굴을 가진 배우, 주증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여성신문이 함께하는 "그리운 여배우" 6탄 주증녀 한국 영화사에는 대단한 여배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업적은 폄하되거나 잊혀져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적다. 50년대 말부터 109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수많은 여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온 김수용 감독의 인간적인 시선과 생생한 기억으로 여배들의 자취를 되살려본다. 여성신문사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그리운 여배우' 연재가 우리나라 여배우사의 귀중하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문정숙은 두 살 위 주증녀를 철이 엄마라고 불렀다. 중학교 때 부모의 이혼으로 철이는 아버지 허영 손에 컸다. 나는 그 아이를 세 살 때 봤다. 고향 안성에서 광복을 맞은 우리들은 ..
외롭게 지고 만 한국영화의 단골 ‘어머니’, 황정순 외롭게 지고 만 한국영화의 단골 '어머니', 황정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여성신문이 함께하는 "그리운 여배우" 5탄 황정순 한국 영화사에는 대단한 여배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업적은 폄하되거나 잊혀져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적다. 50년대 말부터 109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수많은 여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온 김수용 감독의 인간적인 시선과 생생한 기억으로 여배들의 자취를 되살려본다. 여성신문사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그리운 여배우' 연재가 우리나라 여배우사의 귀중하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01 02 ▲영화 '갯마을'에 출연한 배우 황정순. ©한국영상자료원 ▲ 영화 '갯마을'에 출연한 배우 황정순. ©한국영상자료원 황정순은 꽃다운 18세에 처음 영화에 출연했는데, 극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