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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SIWFF]

바람과 함께 사라진 걸까? : 인디 영화와 여성 관객

 
바람과 함께 사라진 걸까? : 인디 영화와 여성 관객


내게는 영화학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늘 영화 이야기를 하는 세 친구가 있다. 교육, 의료, 디자인…… 업종도 다양하신 나의 친구들은 나름 뚝심 있는 관객님들이시다. 업자인 나보다 더 자주 극장에 드나드시니 가끔 학문으로 영화를 접하는 게 딜레마로 느껴지질 정도다. 종로에 씨네코아가 버티고 있을 무렵 가뭄에 콩 나듯 한 편 두 편 찾아보기 시작하더니 언젠가부터 하이퍼텍나다, 씨네큐브, 스폰지를 종횡무진……했었더랬다, 최근 몇 년 전까지.

 

     

                

                          (사진 : 좌) 서울아트시네마 우) CGV 무비꼴라쥬 <돼지의 왕> 시네마 톡 출처: 씨네21)

사실 이 친구들은 서울아트시네마는 거의 찾지 않는데다가 영화 거장들의 작품들을 딱히 더 선호하지도 않으니 일반적인 의미에서 시네필 혹은 예술영화 관객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녀들의 전성기는 소위 인디 영화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잡지와 신문에 등장하던 2006~2008년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이들은 우연찮게도 모두 나보다 플러스 마이너스 삼 년 정도 더 혹은 덜 산 싱글들인데, 가양은 주로 <잠수종과 나비> 와 같은 유럽영화를 나양은 <카모메 식당> 류의 일본 영화를 그리고 다양은 잡식성으로 몇 년 전엔 <원스>에 빠져서 혼자 콘서트에 다녀왔다고 한다. 서로 전혀 다른 취향처럼 보이겠지만 나름 유사한 감수성이다, 내가 보기엔. 왜냐하면 모두들 사소한 인간 관계나 자기 성찰에 관한 영화에 눈빛을 반짝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녀들의 인디 영화는 단지 저예산, 독립영화의 영어식 표현라기보다는 이들의 감수성을 대변하는 일종의 장르처럼 보인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라기엔 이미 반 년 이상의 시간차가 있지만) 이 친구들이 영화 이야기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가양은 집에서 더 가까운 아트하우스 모모가 생겼는데도 전만큼 극장을 찾지 않는단다. 다양도 직장 근처 상상마당이 있건만 좀처럼 가지 않는다. 갑자기 변심이라도 한 것일까?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를 같이 봐줄 사람은 나뿐이라던 나양도 최근 나에게 보자고 한 영화는 <캐리비안의 해적> 3D였다. 그녀가 모 극장의 베스트 스팟을 예매하기 위해 들인 노력을 보면서 , 인디 영화 붐은 잠깐의 바람이었나. 이젠 3D의 시대인가라는 질문이 생겼다. 사실 나에게 3D영화는 한두 번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면서 뭐가 다른가를 궁금해하는 것으로 충분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아바타>이후의 3D 열풍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후 나양에게 슬쩍 물었다. “ 3D 영화가 좋은 거야?” 그러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 3D 별로 안 좋아해요. 이 영화 지금 2D로 개봉 안 해요아차, 나양은 조니뎁 팬이었지. 여전히 다른 인디 영화를 제치고 <캐리비안의 해적>을 보자고 한 것은 의외였지만
그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대답이 문뜩 관객의 변심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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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 통계를 보니 전체 극장 관객수는 2005년 이후 상승세를 타다가 2009년 이후 다시 하락세, 그 중 다양성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독립, 인디, 저예산, 다큐 등의 영화 관객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헌데, 2009년 압구정 스폰지가 폐관한데 이어 지난 해인 2011년에는 하이퍼텍나다도 문을 닫을 만큼 최근 몇 년간 단관 예술극장들은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2008년 멀티플렉스에 예술전용관이 본격적으로 활성화 되면서 진정 다양한영화들이 배급될 기회를 가지게 된 것 같았지만, 전체적으로 다양한 영화 관객이 성장하지 않은 걸 보면 이 새로운 상영관들이 실질적으로 새로운 관객을 창출하지는 않은 것 같다. 구체적인 인과관계는 더 살펴봐야겠지만, 지극히 주관적으로 말하자면, 멀티플렉스 내의 예술영화 전용관을 애써 찾아가고 싶은 마음은 잘 생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치 주인집 옆 지하 쪽방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이 단지 스크린을 본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이미 극장을 찾아가는 길목에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극장 문을 열고 티켓을 끊고 잠시 기다리는 모든 시간이 영화를 본다는 것에 포함된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공간의 차이는 특정 영화 관객의 정체성 형성에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동시에 같은 나와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을 확인하게 하는 공간의 힘. 그런 의미에서 인디영화 전성기 즈음에 시작된 전용극장들은 아직 아우라를 형성하는 단계에 있고, 기존의 극장들은 하나 둘 문을 닫거나 공간의 성격을 바꾸면서 기왕의 힘을 상실한다. 사실, 인디 영화 바람이 사라진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한 때 주목 받았던 관객층의 감수성과 맞닿는 프로그램의 부족이 더 크겠지만.

 

2009 <워낭소리>의 이례적인 성공으로 혹자는 한국독립영화의 부흥과 다양성 영화의 성장을 점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디영화 관객과 이들은 또 다른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독립영화는 아직 너무 어렵거나, 지나치게 정치적인영화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취향을 누군가는 그저 한 때의 쿨~한 문화 트렌드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고. 하지만, 난 내 친구들이 단지 팬시 상품으로 영화를 보아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잠시 갈 곳을 잃었을 뿐. 어쩌면 그녀들이 직면한 현재의 정서적 이슈는 그들의 감수성을 황폐하게 만드는 생활 스트레스를 줄이는 일이기 때문에 잠시 다른 곳에 눈을 돌렸는지도 모르겠다. 셋 다 모두 카카오 톡으로 모 팟캐스트 방송을 당장 들으라며 나를 닦달한 걸 보면. 결국 감수성은 시대와 함께 하는 것이니 이 전개는 필연적인 걸까.

 

- 박미영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