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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화제/11회(2009) 영화제

[손프로의 마이너리그] No.1 - 프롤로그: 조금 다른 소통의 시작

 




조금 전에 영화를 한 편 봤다.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로, 레즈비언 커플이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남자의 정자 없이 자신들의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영화다. 작년 여성영화제 때 퀴어 레인보우 섹션을 통해 소개했던 <서큐버스>의 감독이 <서큐버스>의 주인공들과 설정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장편 극영화를 만든 것이다. 사람을 울리고 또 웃기는 작품이라, 영화를 보며 혼자 낄낄 거리다가 곧 훌쩍 거리는 등 흉흉한 관람행태를 선보였다. 

사무국 시사 공간에서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함께 일하는 '안코디'가 씩 웃으며 "영화 괜찮았어요?"라고 묻는다. 두 달 앞으로 훌쩍 다가온 영화제. 이제 영화 선정을 마무리 해야 하는 시기인 탓에 내가 어물 어물 선택을 미루면 실무를 진행하는 안코디의 마음도 편하지만은 않을 터다.


"이 영화 초대하자."


'안코디'에게 초청 진행을 부탁하고 나서 다시 자리에 앉는다. 여성영화제라는 공간에서 상영할 때 작품의 파워가 더 세질, 정말 할 이야기가 많은 작품이 될 것이다. 레즈비언 커플의 임신과 출산, 줄기세포 이슈, 한국과 북미 사이에 존재하는 동성애자 인권 실태의 간극, 여성과 모성의 문제, 그리고 종교와 호모 포비아 등... 이런 이슈들이 이야기 되려면 프로그램 노트에서 충분히 맥락을 만들어 줘야 할 것이며, 그것으로 부족하면 감독을 불러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해야 할 것이고, 그것도 부족하면 좀 더 심화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포럼과 같은 이벤트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 노트의 원고매수는 원고지 5매 안쪽으로 한정되어 있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은 30분에서 40분을 넘기기 힘들며, 8일이라는 영화제 기간과 한정된 예산을 생각하면 "이야기하고 싶다"고 무조건 이벤트를 기획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작품 한 편만으로도 토론할 만한 주제에서부터 귀여운 주인공들에 이르기까지,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스턴트 감독을 맡아 왔던 감독 알리슨 레이드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이 작품의 에필로그 격이었던 <서큐버스>에 이르기까지 정말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지금까지 활용해왔던 공간들 안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묻혀지기 마련이었달 수 있다.

그래서 문득 [손프로의 마이너리그]는 다가오는 여성영화제에서 소개하려는 다양한 영화들에 대한 '오프로드 스토리'들을 풀어내는 공간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이너한 영화를 마이너하게, 혹은 메이져한 영화도 마이너하게 읽겠다"는 애초의 기획은 4월 16일 영화제가 끝난 이후로 살짝 미루어도 괜찮지 않나 싶어진다.



오늘부터 시작해서 규칙도 스케줄도 없이, 손프로가 땡길 때 아무때나 마음대로 쓸 예정인 [손프로의 마이너리그]는 제 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을 내 멋대로 소개하도록 하겠다. 물론 내가 담당하고 있는 [걸즈 온 필름], [퀴어 레인보우], [천 개의 나이듦] 섹션을 중심으로 영화가 선정될 것이다. 어느 다른 '공식적인' 공간에서 만날 수 없는 흐물흐물하거나 혹은 꽤 음산한 소개, 조만간 시작된다. 아자.



- 손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