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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화제/11회(2009) 영화제

[손프로의 마이너리그] No.2 - 기자회견을 했다.






'손프로의 마이너리그'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곳이긴 하지만, 꼭 영화 이야기가 아니면 어때, 하는 마음이 문득 들어 글을 올리기로 했다. 개인 블로그도 있지만 굳이 오늘은 이곳에다 글을 쓰고 싶다했던 건, 오늘이 제 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기자회견이 있었던 날이기 때문이고, 기자회견을 했기 때문에 글을 쓰고 싶어졌기 때문이고, 기자회견이 끝나서 전체 라인업이 공개되고 나면 신나게 영화 이야기를 블로그에다 써야지 하고 마음 먹었었기 때문이다. (그간 일중독 3기 판정을 받은 웹팀장의 업데이트 압박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공식 기자회견을 하기 전에 상영작을 공개하는 건 전략상(?) 좋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홈페이지 오픈을 위해 어제부터 오늘까지 총 35시간을 연속 근무했다. '손프로의 마이너리그' 한 달만의 업데이트가 심한 과로 중인 그녀에게 작은 선물이 되길 희망해 본다.)


기자 회견을 했다. 11회를 통해 소개될 23개국 105편의 영화가 어떤 면면을 가지고 있는지 선보였다. 물론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언제나처럼 한도 끝도 없었지만 '정해진 시간'이라는 것이 있는 탓에 적당히 얼버무려야 했다. 심지어 시간 제약을 잊고 혼자 떠들던 중 "간략히"라는 진행자의 주의 메모를 받고 나서부터는 당황해서 그나마도 제대로 이야기를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은 이후로는 더욱) 무엇에서든 '프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지만, 5년을 하루처럼 영화제에서 일해 온 2년 차 프로그래머라면 그런 상황에 당황하지 않을 정도의 여유는 가지고 있다면 좋겠다 싶어진다.


지난 7개월 간 총 300여 편의 영화를 보고 (물론 그 중에 단편경선 150여 편이 큰 몫을 하긴 하지만) 여러 가지 고려 끝에 신중하게 선택한 영화들을 이제 사람들의 눈 앞에 펼쳐 놓는다. (나 혼자 본 편수가 이 정도니, 우리 수석 프로그래머가 본 것까지 합치면 훨씬 많아진다.) 작년 10회 때 처음으로 남성 감독이 연출한 여성영화를 상영하는 '오픈 시네마'를 신설하면서 기자 회견 장이 온통 '오픈 시네마'로 들끓(?)었던 것처럼 올해는 온 세계를 들썩이게 하고 있는 경제위기 때문에 영화제 역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고, 따라서 규모를 다소간 줄이되 초심으로 돌아가 내실을 다지겠다는 위원장님의 발표가 기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사실 기자회견이란 영화제의 큰 그림을 선보이는 곳이지 작품 한 편 한 편에 방점을 찍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이건 너무 당연한 상황이지만, 영화를 고른 사람의 입장, 그리고 그 한 편을 틀기 위해서 말 그대로 '불철주야' 일하는 스탭들을 생각하면 내가 좀 더 욕심을 내서 작품 이야기를 더 하지 못한 것이 살짝 서운하기도 하다. 뭐... 지금부터 남은 한 달, 기운을 내서 좀 더 열심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2009년에 영화들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럴 때에 개별 작품들은 어떤 메세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해야지, 라는 생각을 해 본다.


기자 회견을 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인 셈이다. 죽네 사네 하면서 영화제를 준비하면서도 신촌 아트레온의 나무 바닥만 밟으면 심장이 뛰는 그 순간이 온다. 관객들의 빛나는 눈, 감독들의 열정, 스탭들의 간절함. 그런 것들이 한 순간에 한 공간에 터지는 4월이 성큼 성큼 뛰어오고 있다. 이건, 꽤 괜찮은, 그리고 꽤 건강한, 마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