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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보라]

울림과 나눔터, 아카이브 2009 결산


 

세상엔 두 종류의 영화가 있습니다. 재밌는 영화와 재미없는 영화. 그리고 재밌는 영화엔 그저 재밌기만 한 영화와 어느 날 문득 다시 생각이 나는 영화가 있습니다. 마냥 깔깔대기만 했어도 혹은 한참을 졸았더라도 어느 한 장면, 어느 대사 하나 때문에 기억에 남게 되는 영화들 말입니다. 아마도 그건 그 영화의 무엇이 우리 안의 무언가와 공명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작은 울림은 우리의 사유를 두드리고 조금씩 커져 다른 이의 울림들과 만나 다시 공명합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이하 여성영화제)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은 후자의 재밌는 영화들에 속합니다. 그리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카이브는 영화가 만들어내는 작은 울림들을 여러 사람들과 다시 만나게 하고 싶은 소박한 바람으로 지난 한 해 전 세계의 다양한 영화들을 아카이빙하고 지역 곳곳을 찾아가 직접 관객들을 만나는 상영회를 개최해왔습니다.


<나는 엄마계의 이단아>


<여전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2009년 저희 아카이브를 통해 대여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이런 공명현상을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스위스 시골 마을 할머니들의 귀엽고 발칙한 독립분투기를 다룬 2008년 아카이브 대여순위 1위였던 <할머니와 란제리>가 2009년에도 2위를 차지하며 그 인기를 실감하게 했고, <34살 노처녀>, <오버 더 힐>, <지포>, <흐리스티나의 집> 등도 꾸준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뭐니뭐니 해도 2009년 11회 여성영화제의 따끈따끈한 신작이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감독 자신의 ‘싱글맘 되기’를 발랄하게 보여주며 여성의 몸,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나는 엄마계의 이단아>가 대망의 1위를 차지했고, <텐텐>, <여전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꼬마사장님과 키다리 조수> 같은 신작들에 대한 많은 분들의 애정도 각별했습니다. 그리고 ‘다문화 사회에 더불어 살기’에 대한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이주여성 영화제작 워크숍> 1, 2, 3회 작품들이 단일 작품으로서는 아니지만 가장 많이 상영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2009년 여성영화제 아카이브는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세리와 하르>, <진옥언니 학교 가다>, <생리해주세요> 등 여러 편의 국내 작품들을 선보일 수 있었고, 특히 <진옥언니 학교 가다>의 경우 청각 장애인을 위한 한글 자막 버전,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내레이션 버전을 함께 제작하는 작지만 소중한 노력도 기울였습니다.


<세리와 하르>, <진옥언니 학교 가다>, <생리해주세요>

2010년 1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카이브는 영화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여성영화를 감상하고 울림을 함께 나눔으로써 일상의 ‘작은 차이’들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올해도 부지런히 뛰겠습니다. 여성영화와 여성영화제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의 많은 애정과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