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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그 10회를 말하다 :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Herstory에 연재될 글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2008년 10주년을 맞아 제작했던 기념 백서 <<여성, 영화 그리고 축제!>>의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기념 백서 <<여성, 영화 그리고 축제!>>는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_보다 _ Records>에서는 1회부터 10회까지 개/폐막식을 비롯한 국제포럼 등의 행사와 상영작들이 총 망라되어 있으며 <_말하다 _쓰다>는 여성영화제의 10년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있습니다. <_Perspectives _Herstory>는 <_말하다 _쓰다>의  영문버전입니다. 
Herstory는 여성영화제의 역사를 기록한
<_말하다_쓰다>에 있는 글을 지속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1997년 4월 11일, 드디어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여성과 영화의 용기있는 첫 만남의 장을 열었다. 지난 2년간 이혜경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준비위원회와 집행위원회, 영화제 사무국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영화 속 여성과 영화 밖 여성은 이렇게 만났고, 세계의 여성은
한국 여성과 이렇게 만났다.

왜, 지금 여기서 여성영화인가?

이혜경 집행위원장은 제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식에서 "이제까지 페미니즘은 서구 중심적이었습니다. 이번 영화제는 우리로부터 출발, 우리 나름의 정체성, 아시아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세계 여성영화를 보여주면서 여성 연대의 틀을 다지고 새 문화의 지평을 열어가겠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1970년대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여러 여성영화제들이 자리잡아 오고 있었고, 1980년대 이후에는 점점 할리우드를 비롯하여 세계의 주류와 독립 영화시장에서 여성영화인들의 약진과 페미니즘 영화가 눈에 띄고 있었다. 1990년대 한국은 페미니즘 의식이 확산되고, 문화운동은 약진하고 있었으며, 영화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에서 페미니즘은 종종 문화상품에 상업적인 레벨로 붙어 다니고 있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여성의 시선에서 여성이 주도하에 진행되는 세계 여성영화의 현주소를 소개하여 우리의 영상문화 수준과 폭을 확대하는 동시에, 한국영화계에 여성인력을 키워내는 밑거름으로써 기능하기 위해서 여성영화의 개념을 살피고 여성영화에 관한 논쟁의 자리를 마련하기로 하였다.

영화계와 영화 속 여성에 대한 반성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최의 가장 큰 목적은 여성의 현실을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성영화들을 중심으로 선보이는 것이었다. 영화 탄생 이래로 영화는 남성들의 손과 머리에서 대부분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그들이 만들어 온 영화 속 여성은 그들이 원하는 여성상에서만 머물러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의 50%를 차지하는 여성 관객은 여성다움의 표상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영화 속 여성을 바라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의심해야만 했다. 게다가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한국영화 문화에서 여성영화인은 양적으로 빈곤했으며 1997년 당시 70여년의 한국영화사를 통틀어 여성감독은 박남옥, 홍은원, 최은희, 이미례, 황혜미, 임순례, 변영주 7명 뿐이었다. 이렇게 세계영화 산업과 한국영화 문화의 안팎을 비판하고 반성하면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여성의 주체를 분열시키는 왜곡된 여성상을 새롭게 조망'하고자 기획되었다. '국제영화제'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아담했지만 7일간 상영된 10개국 39편의 영화들은 여성과 영화의 해방구가 되었고, 그 영화를 보고 동숭아트센터 광장으로 나온 관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스크린의 여성 혁명이 시작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한국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두번째로 개최된 영화제엿다. 4월, 봄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축제이자 한 해 국내 영화제들의 포문을 여는 축제로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영화를 향해 세상을 향해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여성영화를 중심에 두고 세게 여성영화의 조류를 짚어내는 신선한 상영작과 독창적이면서도 다양한 프로그램, 톡톡튀는 독창적인 부대행사로 다른 영화제와 다른 색깔을 보여주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상영작들만 둘어보아도 여성문제의 지형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알찬 상영작 선정은 언제나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자랑거리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꼭 보고 싶은 여성영화가 있다? 그렇다면 절대 게을러서는 안 된다. 예매는 일찌감치 마감되고 10시에 문을 여는 현장매표소도 정오가 되기 전에 현장판매분이 동이 나기 때문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1회부터 지난 9회까지도 표를 구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보여주는 장관을 매회 연출하고 있다. 오직 부지런한 자만이 영화를 볼 수 있다.

"단순한 영화제가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다.
여성들이 모여 같이 이야기하고 여성들 간의 연대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영화 이상의 무엇이 있다." 다이진 후아 

여성들에게 있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가장 큰 역할은 그 무엇보다도 만남의 시공간을 제공한다는 데에 있다. 스크린의 안과 밖에서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삶, 다양한 꿈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여성과 영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동료, 친구, 선후배가 만나 눈과 귀와 가슴을 열고 공감을 하면서 또 차이를 알아가는 곳.  여성과 영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동료, 친구, 선후배가 만나 눈과 귀와 가슴을 열고 공감을 하면서 또 차이를 알아가는 곳.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여성의 문제에 대해, 영화에 관해 그리고 사회의 곳곳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여성들의 영화를 중심으로 열린 광장에 모이게 하는 축제의 장이자 운동의 공간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1회, 2회, 3회......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작지만 내실있고 주제의식이 뚜렷한 영화제로, 대중과 함께 하는 축제로 자리잡았다. '여성, 영화, 축제'라는 개념 아래 다양한 여성영화의 상영관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적인 문화행사로 영화제의 의미를 한 단계 끌어올린 영화제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그간 해를 거듭하면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서울은 물론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적인 행사이자 세계 최대의 국제여성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또 세계 여성영화의 흐름을 소개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점점 그 흐름을 만들어가며 여성영화 발전에 기여하는 영화제로, 아시아와 세계를 잇는 국제여성영화제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경험과 노하우가 쌓여가면서 조직화된 국제영화제의 표본으로 각종 해외 여성영화제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던 즈음, 일본의 오사카여성영화제는 바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모델 삼아 만들어졌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이루언 낸 것

1회 단편경선 수상작인 박찬옥 감독 <있다>(좌), 장희선 감독 <웰컴>(가운데), 김시경 감독 <한 거울 이야기>(우)

햇수로 12년, 횟수로 10년을 맞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국내의 몸집 큰 국제영화제들의 틈바구니에서 '우수영화제'의 순위에 꼽히고 있다.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 중 하나로 '영화제의 독창성'이 꼽힌 것은 그간 여성영화제가 걸어온 올곧은 길과 그만의 색깔을 짐작케 한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만들어낸 그간의 성과라고 한다면, 지위지고 가려졌던 여성문화를 가시화하고, 여성영화 인력을 발굴해내어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다시 그녀들의 차기작을 영화제에서 상영함으로써 영화제도 힘을 받는 발전적인 관계를 이루어냈다는 점을 들 수 잇다. 이는 한국영화의 발전뿐만 아니라 세계영화의 발전을 위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기여한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곳곳에 손을 뻗쳐 여성들의 이해와 연대에 앞장섰다고 자부하고 있다. 참신한 영화, 새로운 시선의 영화에 대한 여성관객의 갈증을 해소해 주고, 여성영화 수요층 확대를 통해 긍정적인 여성주의 시각을 만들어내고, 여성의 권익 증진과 성평등 문화에 기여했다는 점, 소수자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 간의 소통과 이해의 축제 공간으로 공동체적 의식을 확산하여 한국사회,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문화다양성에 주목했다는 점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만들어낸 자그마한 성과가 아닐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아시아 최고의 여성영화제로 거듭나기까지
국내의 국제영화제 중에서 우수영화제로 평가받는, 아시아 최고의 국제여성영화제이지만 예산은 언제나 부족했고 편견은 언제나 막강했다. 척박한 한국 여성문화의 지형도 내에서 튼실하게 자리잡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1회 첫 발걸음을 뗀 후에 격년으로 개최를 하기로 하고, 2회의 단편경선부문의 상금은 선배영화인들이 모금해서 마련하여 진행하는 등 IMF로 인해 가장 힘든 2회를 치러냈다. 그러나 3회부터는 문화관광부와 서울시의 지원으로 영화제는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정부의 지원과 사회다체들의 협찬, 후원금과 극장수익 등의 다양한 후원의 등장으로 예산이 급증했다. 관객의 호응에 힘입어 3회를 기점으로 영화제는 격년제에서 매년 개최로 전화되고, 5회 영화제는 사스 열풍과 이에 다른 경제 불황에도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영화제가 열리는 대학로의 상영관이 본래 공연장이었단 공간을 영화 상영관으로 이용하는 바람에 사운드시스템이 좋지않아 최상의 영사상태를 구현하지 못한 것이 종종 안타까운 점으로 지적되곤 했다. 6회부터는 영화제의 마당을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젊음과 문화의 거리 신촌 아트레온으로 옮겨 최상의 영사상태와 더불와 활기찬 변화의 기운을 맞으면서 관객과 수익이 큰 비중을 차지하진 못하는 실정이라, 절반은 국고지원 및 스폰서 지원으로 해결하고, 절반은 자체부담으로 해결한다. 난관이 있을 때마다 그래도 언제나 든든한 건 관객이었다.

"나, 이 영화 안 봤으면 2년 동안 후회할 뻔 했어"

제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심야상영 사이 휴식시간, 한 관객이 친구에게 건넨 말이다. 이렇듯 그 어떤 것보다도 서울국제여서영화제의 저력은 1회부터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고정 관객층이다. 이들은 탄탄한 오피니언 리더 그룹을 형성하며 서울국제여서영화제를 입소문 효과가 뛰어난 영화제로 만들어 주었다. 또한 이들은 여성영화를 통해 지적 욕구와 삶의 질을 높이고, 영화제라는 장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고 여성공동체의 공감대 형성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여성영화에 대한 이해를 보다 넓히고 창의적인 시각을 발견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들의 지지에 힘입어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평균 좌석 점유율 90%를 꾸준히 유지하는 국내 유일의 영화제다. 그 중심에는 수도권의 20, 30대 여성이 중심관객이 되고 있지만 모녀 관객, 커플 관객을 비롯하여 점점 남성과 중장년층 관객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영화제가 끝난 후에도 아카이브를 통해 지역 여성 문화와 교류하면서 지방 관객과도 꾸준히 호흡하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매표소 앞의 긴 줄은 많은 관객들에게 여성문화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고 그들의 눈높이를 높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여성 관객들에는 고정된 성역할과 성차별 문제를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남성 관객들에게는 여성문제에 대한 이해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감동으로 충만한 영화제' '즐거우면서도 편안한 축제의 느낌' '속이 꽉 찬 영화제' '대중적 재미, 영화적 실험'
'여성문제에 대한 폭넓은 시선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하는 건 일상화된 풍경'
'관객이 인정하는 인기영화제''젊어진 여성영화 자신감, 그 에너지 폭발'



박남옥 <미망인> (1회 개막작/오른쪽 위) 제인 캠피온 <두 친구>(1회 쟁점:여성들 사이의 관계/왼쪽 위)
마가레테 폰 트로타 <크리스타 클라게스의 두번째 각성>(1회 딥포커스:뉴제먼페미니스트시네마/ 오른쪽 아래)
헬마-산더스 브람스 <독일, 창백한 어머니>(1회 딥포커스:뉴저먼페미니스트시네마/왼쪽 아래)


래리&앤디 워쇼스키 <바운드>(1회 새로운물결/오른쪽) 메리 해런 <나는 앤디워홀을 쐈다>(1회 새로운물결/ 가운데)
줄리아 다이어 <늦게 핀 꽃>(1회 쟁점:여성들 사이의 관계/왼쪽)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넓어지고 다양해진 관객층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새로운 변신을 시도해야하는 고민과 여성주의적 관점을 흔들림없이 유지해야하는 고민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들이 영화 안팎에서 겪는 현실에는 불균형이 존재하는 지금,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임무와 가치는 변함없다. 영화산업이 비대해지고, 크고 다양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영화'를 쉽게 접하기는 힘들다. 그 상황 속에서 여성들은 제 손과 머리 그리고 가슴으로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그들을 위해, 또 그들과 조우하기 원하는 관객들을 위해 꾸준히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임무이자 가치라고 여긴다.
그간의 풍부한 경험과 역동적인 젊음이 조화된 의미 있는 축제로의 선두주자로, 여성을 매개로 하여 문화예술을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축제로, 여성과 문화정책을 주요 의제로 끌어올려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세계 최대의 국제여성영화제로 자리매김하는 시점에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앞에 다가선 문화의 미래를 본다. 그 미래는 여성영화로부터 여성주의 문화담론을 활성화하며, 여성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공적 영역으로 확산해 내는 열린사회이며 성별, 세대, 지역 등 모든 경계로부터 벗어나 여성의 감수성, 창조성, 상상력으로 함께 어우러지는 생명력 넘치는 진정한 공동체의 공간이 될 것이다. 그 미래를 향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여성, 그 이상의 영화제로 그 틀을 넓혀나가고자 한다. 

- 심혜경, 10주년 백서 <<여성, 영화 그리고 축제!>> 책임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