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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보라]

여성영화와 함께 달빛아래 춤추다

지난 9월 4일부터 5일, 1박 2일 동안 여성들을 대상으로 여성영화 치유캠프 '달빛아래 춤추다'를 열었습니다. 
여성영화 치유캠프는 <치유하는 글쓰기>의 저자이자 마음치유 전문가 박미라, 무용심리치료사 한지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권은선 강사와 함께 강원도 강릉 한국여성수련원으로 치유여행을 떠났답니다.
햇살, 바다, 달빛. 여성영화를 보며 시네마토크를 통한 강한 공감을,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풀어주는 명상과 감성을,
갇힌 몸을 열게 해주는 동작치유를 받으며 엄마, 딸, 며느리 역할을 모두 떨쳐버리고 오로지 여성인 '나'를 만나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이 글은 여성영화 치유캠프 후기입니다. 본문에 언급되는 토리, 토마토, 깜장 등의 이름은
친밀감을 높이고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자신을 대표하는 닉네임을 통해 새로운 '나' 다시찾은 '나'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1. 공간 : 버스 안
낯선 사람들이 여성영화 치유캠프를 위해 모였다. 흔들리는 버스 안의 자기소개 시간. 2주 전부터 곰곰 자신의 별명을 생각해 온 사람들이 이름 대신 애칭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시를 너무 사랑하는 분위기메이커 못말려님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어렸을 때부터 아무도 자신을 말리지 못해 별명을 못말려로 지어왔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왁자하게 웃으며 자기소개를 한다. 한강님(하루에 한강을 6번이나 건너서), MB(회사 이니셜을 따서 애칭을 만들었지만 사람들이 매우 부르기를 꺼렸다), 비아독(비상하는 아기 독수리가 되고 싶다며), 마루(대청마루처럼 사람들이 쉬다 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등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애칭들이 잇달아 버스 안을 들썩였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주, 한국남성과 결혼한 이주여성으로 여성영화제가 매년 진행하는 '이주여성 영화제작 워크숍'을 통해 여성영화제와 인연을 맺어 치유캠프에 참여한 토마토님에 이르자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자칫 어색할 수 있는 시간들을 이렇게 활짝 열어놓은 치유캠프 참여자들은 "나를 열자"는 키워드로 캠프가 시작하기도 전에 그렇게 자신을 열어가고 있었다.  

2. 공간 : 숙소
'여성영화 치유캠프 달빛아래 춤추다' 치유캠프는 어머니, 딸, 며느리로 살아온 피곤한 일상을 벗어나 풍만한 달빛 아래 나를 풀어놓는 것이다. 숙소에 처음 도착했을 때 사람들의 입에서 하나같이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방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강릉의 한국여성수련원은 푸른 바다가 시야를 앞도하며 사람들을 맞이한다. 월풀 욕조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바라본 바다! 단지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무한 치유를 안겨다 줄 것 같은 행복한 숙소였다. 사람들의 입가에 웃음꽃이 절로 피어나고 시작(詩作)을 좋아하는 못말려님은 아마 시를 한무더기로 짓고 가시지 않았을까 싶은 낭만이 깃든 곳이었다.



3. 이야기
보풀(권은선 강사)님의 [시네마토크]. 여성영화제 10회 상영작 <가족프로젝트-아버지의 집>을 보고 아버지 입장에서, 엄마가 되어, 아들이 본, 딸의 시각으로 각기 캐릭터가 지정된 팀을 나누어 진행된 롤플레잉 토크로 말의 봇물이 터졌다. 저렇게 많은 말들을, 저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평소에는 어떻게 담아두었나 싶을 정도로 폭발적인 대화들이 오고간다. 절대권력과 같은 권위적인 아버지를 대하는 가족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담은 <가족프로젝트> 속에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 살아온 과거, 미처 몰랐던 타인의 입장이 천개의 목소리와 천개의 공감으로 살아났다. 강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던 우리의 언어가 둑을 무너뜨리고 삽시간에 온 강의실을 적신 것이다. 웃음, 눈물, 아픔. 마치 오늘이 전부인 것처럼 터져나오는 푸른빛 언어들.



4. 나, 나, 나 
감짱(박미라 강사)님이 진행하는 두번째 프로그램 [치유하는 글쓰기]. 앞 시간의 봇물처럼 터져나왔던 언어들을 이제는 내 안으로 되감는 시간. 우리 모두에게는 상처받은 어린 아이의 내가 있다. 성인이 되었어도 이 아이는 자리지 않고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 이런 상처받은 나를 다시 만나 보듬어야 한다는 감짱님의 조근조근한 말소리가 강의실을 울리면 사람들의 눈빛도 덩달아 반짝거린다. 불을 소등하고 글쓰기를 위해서 하나둘 씩 테이블 위에 초가 생겨났다. 환한 전등 아래 시험을 치듯이 경직된 분위기의 글쓰기가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다가온 신선한 충격! 나. 나. 나. 수만가지의 내가 흰 종이 위에 활자가 되어 너울거린다. 자신을 대면하는 오롯한 시간. 망설임도 부끄러움도 모두 던지고 자신을 만나는 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만이 가지는, 고요하면서 터질듯 팽팽한 힘들이 테이블마다, 종이마다, 펜을 쥔 손마다 타오르고 있다. 다양한 색깔의 스펙트럼으로 빚어지는 나.



5. 달빛아래 춤추다
이다(한지영 강사)님의 [달빛모션테라피]. 동작치유는 무용심리치료가 중심이 된다. 바닷가로 나가 달빛을 받아들이기 전에 강의실에서
시작된 가벼운 몸풀기. 나의 별칭과 관련된 몸짓을 하면 사람들이 함께 하면서 파도처럼 전달되는 동작에서 사람들은 나를, 그리고 타인의 움직임으로 느낀다. 나에게 집중된 에너지를 타인과 나누고 그럼으로써 다시 나를 찾는 움직임에 사람들은 해방감이라도 느끼듯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바닷소리가 들리는 밖으로 나갔다. 모두 함께 그리고 둘, 때로는 셋. 달빛 아래 사람들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더욱 도드라진다. 상대방에게 온 몸을 내맡겨 보세요. 맞은 편의 움직임을 거울이라고 생각하고 따라해 보세요. 둘은 하나가 되고 또 둘은 타인이 된다. 평소 몰랐던 경직된 내 몸 상태에 대해서도 느껴보고 나의 동작에서 억압된 심리상태를 발견하기도 한다. 제대로 하자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가 가장 좋다고. 나를 벗고 다시 나를 입는 리듬. 나를 잊고 나를 찾는 움직임.  
 


6. 이렇게
1박 2일은 이렇게 지나갔다. 떠나는 날 아침 다 함께 바닷가 산책을 나섰다. 아침바다를 바라보면서 가볍게 몸을 깨우는 참가자들은 어제의 그들이 아니다. 내 안의 자유로움을 느껴본 이들만이 가지는 어떤 분위기. 오늘 그들은 백사장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돌아갔다. 바다. 바람. 치유. 모두 너무 반가웠습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