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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희망을 이야기 하는 베를린 영화제의 여성감독들_제62회 베를린 영화제





 



62해째를 맞이하는 베를린 영화제가 “격동”이라는 주제로 닻을 올린 이래 따비아니 형제(P. Taviani & Vittorio Taviani)의 작품 <시저 머스트 다이Caesar Must Die>(2012)의 금곰상 수상 소식과 함께 뜨거웠던 10일간의 여정을 마감했다. 한파와 유럽의 경제 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열린 영화제인 만큼 400편에 달하는 상영작들은 인종주의적 테러위협에 처한 루마니아 집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저스트 더 윈드Just the Wind>(Bence Fliegauf), 아프리카 내전 지역의 소녀병을 다룬 <워 위치War Witch>(Kim Nguyen) 등의 작품이 포진한 경쟁 섹션과 “아랍의 봄”을 다룬 작품들과 함께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폭발을 다룬 이와이 슈운지Iwai Shunji의 <프렌즈 애프터 3.11Friends After 3.11>이 비경쟁 섹션에서 상영되며 많은 화제를 모았다. 이런 상영작들의 면모가 정치적인 영화제의 모토를 확인하게끔 한 반면, 따비아니 형제의 금곰상 수상에 대해서는 다소 보수적이고 안전한 선택이었다는 비판 등이 공존하는 영화제였다.

                                                                                                                                                            제62회 베를린영화제


 




작품들의 다양한 정치적 주제가 화제가 된 가운데 베를린을 찾은 여성감독들의 영화에서는 절망적인 시대인식의 한 가운데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끈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들이 돋보였다. 그리고 그 돌파구는 판타지를 경유하여 모색되고 있었다. 신작 <블리스Bliss>로 다시 한 번 베를린 영화제를 찾은 독일 여성감독 도리스 되리Doris Dorrie는 내전 중인 고국을 떠나 베를린으로 온 이방인 이리나Irina와 베를린 출신 홈리스 펑크족 칼리Kalle의 사랑을 그린다. 불법 체류 중인 이방인 여성과 사회의 내부자적 외부자인 홈리스 남성의 마주침을 통해 감독은 어디에도 속할 곳 없는 젊은 세대의 고독과 단절, 관계의 절박함을 그려낸다. 인간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견지해온 도리스 되리 감독의 카메라는 2012년 관계 맺기와 행복의 가능성을 움켜지며 절망적 세계 속에서 관객을 위로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파노라마 부문에서 상영된 마케도니아 출신 테오나 미테브스카Teona Strugar mitevska의 신작 <눈물을 털어낸 여자The Woman Who Brushed off Her Tears>(2011)는 새로운 여성작가의 탄생을 예견케 한다. 마케도니아 변방에 위치한 하층계급 여성의 삶과 프랑스 대도시 중산계급 여성의 삶이 서로 얽혀들며 병렬적으로 제시되는 구성은 서로 다른 삶의 조건에 처한 여성의 삶을 예리하게 고찰한다. 다소간 컬트적 스토리로 전환되는 후반부에서는 유머와 함께 우화적 전복의 순간을 선사하며 영화적 판타지의 정치성을 실감케 한다. 한국계 디아스포라 감독 김소영So Young Kim의 <엘렌을 위하여For Ellen>(USA, 2012)에서는 감독의 영화적 행보가 흥미롭다. 그동안 <방황의 날들>, <나무 없는 산>에서 감독은 부모 없이 세상에 던져진 딸들의 이야기를 펼쳐왔다. 영화 속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아예 드러나지 않거나 부재하는 것으로서만 존재하며, 엄마들은 이 딸들을 돌볼 겨를이 없다. 이제 감독은 세 번째 장편영화에 와서 가족에게 부재해왔던, 혹은 부재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서사를 펼쳐놓는다.

 

                            도리스 되리Doris Dorrie                                                                                         (스틸)_<블리스Bliss>中
 




 



파노라마 다큐멘터리 섹션에서는 여성예술가를 다룬 독일 다큐멘터리가 눈에 띄었다. 대표적으로 오드리 로드Audre Lorde가 베를린에서 여성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시작 활동을 해왔던 시기의 비디오 푸티지를 활용해 오드리 로드의 작품세계와 함께 그녀가 베를린에서 아프리카계 독일인 액티비즘을 이끌어왔던 과정을 다룬 <오드리 로드: 1984년에서 1992년까지의 베를린 시기Audre Lorde-The Berlin Years 1984 to 1992>(감독 Dagmar Schultz, 2011)가 상영되었다. 스스로를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흑인, 시인, 어머니이자 활동가’로 규정했던 오드리 로드의 교육과 작품 활동이 어떻게 독일의 이후 세대 페미니즘과 흑인운동에 기여해왔는지를 분석한다. 또한 뉴저먼 시네마의 대표적 여성감독이자 초현실주의적이고 인공적인 화려한 시각적 스타일로 유명한 울리케 오팅거의 작품세계를 조망한 <울리케 오팅거: 호수의 노마드Ulrike Ottinger - Nomad from the Lake>(감독 Brigitte Kramer, 2012) 역시 상영되어 화제가 되었다. 감독 브리지트 크라머Brigitte Kramer는 자신이 그녀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감독이 되기까지의 자전적 이야기로 영화를 시작해, <마담X>, <프릭 올란도> 등을 통해 성적 금기를 깨트리고,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미지의 세계를 탐구해왔던 울리케 오팅거의 작품세계를 조망해간다. 베를린에서 상영된 이 멋진 작품들이 한국 관객들과 만나게 될 날을 손꼽으며 글을 마친다.

                                                    (스틸)_<눈물을 털어낸 여자>中                                       (스틸)_<울리케 오팅거: 호수의 노마드>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