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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SIWFF]

성폭력을 다루는 또 하나의 성폭력_매스미디어의 눈

 

여러분은 거의 매일 들려오는 갖가지 성폭행 사건에 얼마나,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세요?

여성에 대한 끔찍한 폭력에 기겁하고 그 폭력이 사회에 만연함에 치를 떨고 있지는 않으세요?  아니면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저 나쁜놈!' ' 저 죽일놈!' ' 당한 여자는 불쌍해서 어떻해' 이러고는 다음 날 잊어버리지는 않으세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 그리고 그 폭력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뉴스레터를 통해 이야기 하고자합니다.

 

어떤 시선으로, 어떤 방향으로 성폭력 문제에 대해 다룬것이지에 대해 영화제 내부적으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고민을 하면 할수록 '성폭력'은 어떠한 시발이 되는 문제 지점을 찾기 어렵더군요. 그러나 영화제 사무국 스텝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한 문제가 바로 '매스미디어에서 성폭력을 다루는 선정성과 폭력성'이었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바라보는 언론의 자비없는 태도는 성폭력 사건을 제일 먼저 기사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쉽게 분노하고 쉽게 판단하고 쉽게 잊어버리곤 합니다.

관심몰이와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기도 하는 성폭력에 대한 언론들의 보도행태에 대해 명지대학교 교수이자 여성학자인 권인숙 선생님께서 뉴스레터에 글을 실어 주셨습니다.  (얼마 전 권인숙 선생님께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한 "성폭력 보도 4배 증가... 그들이 노리는 것은? " (오마이뉴스. 2012.09.06)을 함께 읽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블로그를 통해 여러분의 다양한 생각을 말해주세요. 성폭력에 대해 여성영화제에서 다뤘으면 하는 주제도 좋고 여성영화제에서 이야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의견들도 좋습니다. 지금 바로 여기서 시끌시끌한 논쟁을 시작해 봅시다.

 

 

 

 

관음증과 선정성, 공포정치의 도구로서의 성폭력 보도 

 

 

 

_권인숙 명지대학교 교수, 여성학

 

 

잠자던 7살 초등생 이불째 납치 성폭행 [한국일보] 2012-08-31

 

아이 볼까지 물어뜯으며 ‘짐승짓’ 했다[문화일보] 2012-08-31

 

[단독]가슴 등 4곳 물어뜯어…“원래 첫째딸 노렸다” [동아일보] |2012-09-01

 

 

최근 발생한 나주 아동성폭력 사건은 여러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가장 긍정적인 부분은 아는 사람에 의한 아동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많이 높였다는 점일 것이다. 동시에 언론이 문제라는 점도 잘 드러내었다.

 

지난 몇 년 성폭력 기사는 메이저 언론의 단골 주제였다. 조두순, 김길태, 오원춘 등 몇몇 가해자 이름과 나영이, 예진, 혜슬이 등 피해자 이름이 낯익게 될 만큼 자주 다루어졌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주와 통영은 성폭력과 깊은 연관성을 가진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나주 이전 성폭력 보도는 좋은 일로만 여겨졌었다. 2년 전 김길태 사건에 많은 메이저 언론이 달려들어 1면에 보도하고 KBS는 김길태가 잡히던 날에 30여분을 할애하며 집중보도하였지만 이런 보도방식이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은 별로 거론되지 않았다. 진보 언론의 간부와 인터뷰를 할 때 성폭력 보도는 많이 하면 좋은 것 아닌가라는 반문을 할 정도였다. 그때도 징후는 뚜렷했다. 언론에 의해 성폭력이 무슨 괴물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일같이 다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은 자주 성폭력 사건에 개입 지도하는 모습을 보여 책임 있는 해결사 내지는 지도자 모습을 가지려 했다. 김길태 사건을 보도하면서 보호감호제 부활을 이야기 했듯이 사회가 혼란스럽다는 인상을 통해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우파적 치안통치를 강화하려는 분위기를 만들려는 의도도 분명했다.

 

그에 대한 문제의식은 최근에야 자리를 잡는 듯하다. 최근 몇 달 째 포털 사이트 메인에서 떠나지 않는 성폭력 기사의 지나친 등장과 성폭력 기사는 일단 무조건 다루고 보는 듯 한 보도행태, 불심검문, 물리적 거세까지 등장하는 현실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다. 성폭력 보도가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는 대중의 판단이 시작된 것이다.

 

아동 성폭력이나 유괴는 불필요한 수준의 선정성과 과도한 불안의 확산이라는 요소 때문에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보도방식에 대해 많은 문제의식과 비판이 있어왔고, 메이저 언론은 성폭력을 조심스럽게 다룬다. 보도 양도 절제한다. 찌라시 수준의 주간신문만이 끊임없이 이런 주제를 선정적으로 다루는 주체로 지목되고 있다. 그만큼 언론의 수준은 이런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판단된다. 성폭력 등의 보도에서 논쟁이 되는 또 다른 요소는 범죄사실을 어떻게 다루는가의 문제이다. 상세한 보도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면서 그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는 메이저이든 찌라시이든 성폭력기사를 다루는 방식이 다르지 않다. 모든 신문에서 7세 여아를 이불째 들고 가 폭행했다는 기사가 나주 여아 성폭력 사건의 첫 기사였다. 문제는 이불이다. 어느 기자가 이불에 시선을 주었는지 아니면 브리핑하는 형사가 강조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왜 모두 이불에 꽂혔을까? 모두 이불을 강조한 것은 누워있는 아이를 달랑 들고 갔다는 이미지와 성폭력을 위해 깔개까지 애초부터 준비했다는 자극성에 주목한 것이리라. 물론 사람들은 이불 때문에 이 사건에 더 관심을 주었겠지만 성폭력 보도에서 행위를 연상하게 하고 불필요한 상상을 낳게 하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모독일 수 있고 누군가의 관음증을 충족시켜주는 요소일 수 있다. 이어지는 기사들도 마찬가지이다. 7세 여아의 가슴을 물어뜯었다는 것은 아동포르노 적인 연상효과가 분명 있다. 첫째 딸을 노렸다는 것도 그렇다.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사람들이 알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자기 대신 동생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알고 그 가족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지, 혹은 이 사실을 듣게 된 언니가 겪어야 할 상처도 만만하지 않을 것 같고, 이후 둘의 관계도 걱정스럽다. 기사들이 몰려들어 이웃들에 그 가족에 대해 물어보는 모든 과정이 아이들과 그 부모에게는 인권침해의 과정이다. 온 국민이 얻은 불필요한 상상과 정보가 이 가족이 겪은 상처에 비해 훨씬 의미 있는 것일까?

 

성폭력보도는 무조건 많은 주의와 배려가 요구된다. 쉽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며 관음증적이 되고 불안을 과도하게 자극하기 때문이다. 어떤 보도보다 인권침해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크다. 메이저 언론이 찌라시보다 나을 게 없는 보도 수준은 한국사회가 성폭력을 이해하는 수준이다. 또한 여성주의적 관점이 거의 자리를 못 잡고 있는 성폭력의 통념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성폭력보도는 어떤 영역보다 더 예리한 사회적 감시와 비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