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데일리 3호
잊히지 않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 <그녀들을 위하여> 주연 배우 킴 버르코 인터뷰
Q. 영화의 주연이자 시나리오에도 참여했다. 본래 연극배우인데 야스밀라 즈바니치 감독과는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 실제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여행했다. 처음에는 영화에 나온 것처럼 순전히 관광객의 입장에서 그곳을 구경하고 즐겼는데, 여행이 끝나고 돌아와서야 그곳에서 벌어졌던 참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경험을 떨쳐내기 어려워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Seven kilometres north-east>라는 연극을 공연했다. 연극을 본 감독으로부터 메일이 왔고 인터넷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함께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Q. 주인공은 끊임없이 사진과 비디오 촬영을 하는데 첫 여행과 두 번째 여행은 같은 행위를 해도 전혀 다른 느낌이다. 기록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 두 번의 여행 모두 기억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 여행에서는 친구들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사진을 찍었다면 두 번째 여행에서는 목격자로서 사진을 찍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면 다리는 그저 아름다운 건축물이지만,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게 되고 나면 굉장히 위협적이고 음울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기록과 촬영은 호텔이나 다리 같은 특정 장소를 기념비로 바꾸고, 그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자 했던 나만의 작업이었다.
그녀들을 위하여 | For Those Who Can Tell No Tales |
야스밀라 즈바니치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2013 | 75' | HD | color | 드라마
Q. 영화가 끝나고 나서 오프닝을 다시 보았다. 무언가를 고발하고 질문하는 듯한 킴의 눈빛이 새롭게 다가왔다. 여성의 관점에서 기억하고, 써야 할 역사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당신이 생각하는 역사와 기억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내가 사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토착민들에게 만행을 저지른 일이 현재까지도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에서 큰 갈등이 되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역사와 기억이라는 측면에서 국제사회가 가져야 할 태도와 책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야스밀라 즈바니치 감독과 함께 작업 중인 차기작품이 그런 주제를 담고 있다. 국제 사회가 갈등 상황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참여를 결정하는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데 있어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영화가 될 것이다.
Q. 위안부 피해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낮은 목소리>를 감상하고 변영주 감독과 함께 GV도 한다고 들었다.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오랜 투쟁의 성과로 성 범죄가 전쟁 범죄로 인정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성 범죄 피해 여성들 또한 국가적 차원의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들었다. 위안부 피해 여성들은 올해로 22주년째 매주 수요일마다 집회를 열고 있다. 이러한 투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물어보고 싶다.
-성범죄를 전쟁범죄로 인식하게 된 점은 고무적이지만, 이렇게 오랜 기간이 걸렸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전 작품인 ‘그르바비차’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야스밀라 감독 또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쟁 기간에 강간당한 여성들을 보상 대상에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크게 보면 진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국제 정의 시스템이라는 것이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다. 한국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활동은 굉장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잊히지 않기 위해, 기억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정말 많은 에너지와 의지를 필요로 한다. 주목과 관심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 놀랍다.
글 김초롱, 차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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