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여성영화제네트워크 출범하다!
지난 6월 5일 막을 내린 제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이뤄진 주목할 만한 성과 중 하나는 지역여성영화제네트워크가 결성된 일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2012년도부터 3년째 ‘전국의 여성영화쟁이 다 모여라’라는 제목 아래, 지역에서 여성영화제 혹은 여성영화상영회를 열고 있는 단체 활동가들이 한데 모여서 공동의 관심사를 나누는 간담회 자리를 만들어 왔는데, 올해 간담회에서 전국의 14개 지역에서 온 활동가들이 ‘지역에서 여성영화제를 여는 의미와 네트워크에 관한 내용’을 공유하고 논의하던 끝에, 서로 지지하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협의체로서 지역여성영화제네트워크를 출범시킨 것이다. 이 자리에 참여한 지역은 서울, 청주, 제주, 인천, 안양, 부산, 천안, 광주, 고양, 김포, 대구, 대전, 경산, 성남(영화제 시작년도 순) 등이다.
△ 6/2 지역여성문화운동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현재 전국 각 지역에서 여성영화제를 열고 있는 곳은 30여 곳으로, 방식은 다양하다. 여성단체에서 시작되어 독립적인 영화제 집행위원회 체제를 갖추고 진행하는 곳(서울, 제주, 인천, 광주, 대구, 충북), 여성단체에서 추진하는 여러 사업 중 하나로 진행하는 곳(청주, 김해, 포항, 전북, 안양, 부산, 울산, 해남, 경산, 강화, 성남), 지역의 여러 단체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곳(거창, 김포, 대전, 창원), 지역의 영상미디어센터와 여성단체가 함께 결합해서 진행하는 곳(익산, 천안, 고양, 진주, 원주, 수원, 강릉), 지자체의 기관에서 여성주간의 행사로 진행하는 곳(아산, 과천) 등, 각 지역마다 갖고 있는 특수성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추진되고 있다. 하루 열리는 작은 영화제부터 4-5일간 열리는 영화제, 인접 지역을 돌며 열리는 영화제, 격년으로 열리는 영화제도 있다. 대부분의 여성영화제는 여성이 처한 다양한 현실을 드러내는, 여성감독이 여성적 관점으로 만든 영화를 중심으로 상영하며,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서 공감을 나누고 여성적 관점과 가치를 공유하는데 비중을 두고 진행한다.
여성영화제가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까닭은?
1997년,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라는 기치를 내걸고 서울여성영화제(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당시 명칭)가 처음 열렸을 때, 어떻게 알고 모였을까 궁금할 정도로 연일 극장을 꽉 채우며 열렬히 환호하고 벅찬 감동을 나누던 관객 속에는 이후에 지역에서 여성영화제를 만들고 이끈 활동가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 감동과 에너지를 살려 1999년에는 청주 YWCA에서 청주여성영화제를 열고, 2000년에는 제주여민회에서 제주여성영화제를 열게 된다.
“해마다 4월이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가서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도발적이고도 참신한 여성영화의 ‘은혜’를 듬뿍 받아 그 자극으로 한 해를 살았던 지역의 여성운동 활동가라면 누구나 ‘우리 지역에서도 여성영화제 하면 좋겠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바람 한 번쯤은 가져보았을 것이다”라고 올해 10회를 맞이한 인천여성영화제의 이영주 프로그래머는 2005년에 인천여성회에서 인천여성영화제를 열게 된 계기를 밝힌다. 대다수의 지역 여성영화제가 공감하는 내용일 터이다.
또 한편으로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2010년도부터 진행해온 지역순회상영회 ‘gogo 시네마’를 통해 여성영화를 접한 지역에서, 지역 특성에 맞는 여성영화제로 발전시켜 지역의 여러 단체와 문화적 연대를 이루며 진행하는 곳이 속속 늘어가고 있다.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감독의 입지는 불안정하고 기회도 적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여성영화제는 지역 공동체 안에 자리를 잡고 여성영화를 통해서 여성들 간의 소통과 공감대를 만들어 가는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반면에 내부적으로는 재정과 담당인력 확보라는 어려운 문제와 씨름하면서 힘겹게 꾸려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지역 여성영화제가 겪는 현실이기도 해서, 서로 기대며 새로운 힘을 생성해낼 수 있는 연대체의 결성은 자연스럽고도 불가결한 요청이며 여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18년 전, 처음 서울여성영화제를 열면서 이혜경 집행위원장은 “혼자 꾸는 꿈은 꿈에 불과하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며 여성영화제의 출범을 함께 해줄 것을 독려했었다. 그런데 16회의 영화제를 치르는 동안 여성영화는 민들레 씨앗처럼 전국 각 곳으로 날아가 30곳이 넘는 지역에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피어나, 이제는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명구를 떠올리게 한다. 지역여성영화제네트워크의 출범은 각 지역의 활동가들에게는 다정한 길동무가 되어주고, 남성 중심적 풍토에서 악전고투하는 여성감독들에게는 비빌 언덕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되기도 한다.
지역, 아시아, 세계로 이어지는 여성영화제 네트워크
덧붙여, 2010년도에 결성되어 긴밀한 교류를 하고 있는 아시아여성영화제네트워크 NAWFF(Network of Asian Women's Film Festival)와 2012년도에 결성된 세계여성영화제네트워크 WFFN(International Women's Film Festival Network)에 관해서도 간략하게 소개할까 한다.
△ 2010년 아시아여성영화제 네트워크 발족식(왼쪽), 2013년 아시아여성영화제네트워크 NAWFF상 시상식(오른쪽)
아시아여성영화제네트워크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시작하면서부터 그 씨앗을 품고 있었다.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개막을 선언하면서 앞으로 아시아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펼쳐나갈 것을 천명했었다. 당시 해외의 국제영화제에 소개되는 아시아영화들이 동양적인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면서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으로 아시아 여성의 모습을 편향되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영화들이 성공적으로 알려지면서 아시아 여성에 대한 왜곡된 상이 자꾸 재생산되는 상황으로 빠져드는 것에 대한 위험을 감지하고, 여성의 다른 비전을 보여주는 영화를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그래서 2000년부터는 대만여성영화제와 도쿄여성영화제와 교류하기 시작했고, 2001년부터는 단편경선을 아시아단편경선으로 확장해나갔고, 매년 아시아 여성영화 국제포럼을 열고 다각도로 아시아 여성영화에 대해서 논의를 진전시켜 나갔다. 그렇게 차근차근 교류하면서 2009년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제안으로 2010년에 드디어 아시아여성영화제네트워크가 설립되었다. 대만, 일본, 이스라엘, 인도, 한국의 5개국이 초기 회원국이고, 올해 터키의 이스탄불여성영화제가 합세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아시아여성영화제네트워크는 영화제간 교류를 통해 여성감독들의 제작, 상영, 배급을 지원함으로써 아시아 여성영화를 지원하는 통합적 조직으로서 역할 하는 한편 여성영화제가 존재하지 않는 지역에 여성영화 상영을 촉진하는 문화운동을 지원하고자 한다. 상호 프로그램을 교환하는 한편, 아시아여성영화제네트워크 상을 제정하여 매해 선정하고 있다.
세계여성영화제네트워크는 2012년 독일의 도르트문트/쾰른 여성영화제에서 발의되어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현재 세계 52곳의 여성영화제가 가입되어 있는 상황이다. 국제영화제의 성별 편향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공동대응을 모색하며 결성되었는데, 이듬해인 2013년에 베를린국제영화제 기간 중에 세계여성영화제네트워크가 주최하는 국제포럼을 열고 본격적인 논의와 연대를 진전시켜나갔고, 이어서 올해도 베를린국제영화제 기간 중에 국제포럼을 진행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2001년부터 프랑스의 끄레테이유여성영화제, 독일의 도르트문트여성영화제 등과 교류하면서 심사위원을 교환하기도 해왔고, 2013년 제 1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여성영화제의 새로운 지도 그리기’라는 제목의 국제심포지움을 열고 세계여성영화제네트워크의 주요 멤버들을 초청해서 논의하는 한편 아시아여성영화제네트워크의 활동을 공유하며 연대를 다져나가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출범한 지역여성영화제네트워크는 아시아여성영화제네트워크, 세계여성영화제네트워크와 함께 손잡고 남성 중심적 문화를 성 평등한 문화 지형으로 바꾸어낼 수 있는 기반으로서도 의미심장한 행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미디어교육실장 김혜승
서울국제여성영화제 6월 뉴스레터_GoodBye Sixteen 3. 우리 동네에서 여성영화제 보자!_7월의 지역여성영화제 4. 2014 씨네페미니즘학교 & 10대를 위한 미디어 교실 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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