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대 영화제/10회(2008) 영화제

<4.13> “내 사촌동생의 영화제 방문기”

“내 사촌동생의 영화제 방문기”




#1. 사촌동생의 전화
11일 오후 7시경 나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마치 전반전을 뛰고 들어 온 선수에게 주어지는 음료와 같이 지금 나의 무료함을 최소 5분 정도는 달래 줄 수 있는 청량제와 같은 전화였다. 이런 내 맘을 알고 있는 통화상대는 누구일까, 내 눈은 조건반사적으로 휴대폰 액정을 향했다. 이현민. 이화여대 경영학과 07학번. 하지만 내게 그녀는 이대생이란 학력보다 뗄레야 뗄 수 없는 혈육의 이미지가 먼저였다. “오빠, 나 영화 보러 갈건데...”로 시작하는 통화내용. 이곳으로 온다는 거다. 자원활동하기 전, 넌 학교랑 가까우니까 와야 돼라고 떠봤던 게 헛수고는 아니였다. 최소한의 보답을 해야 했을까, 3,000원 짜리 팝콘을 사고 상영관 앞에서 기다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11일(금) 오후 8시 영화 <독일, 창백한 어머니> 티켓을 들고 있는 여성 관객.
[왼쪽부터 이혜원(22)과 이현민(21)]



#2. 상영 전 짧은 만남
금방 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상영 시간 10분 전이 되어도 오질 않는다. 주위 사람들은 각자의 티켓을 꺼내보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 영화가 상영되는 3관의 위치를 문자로 보내고 있을 무렵, 누군가 뛰어왔다.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의 신발소리였다. 아는 학교 선배랑 왔다며, 인사를 시켜준다. 마치 사촌동생이 나이 많은 사촌오빠에게 소개팅 주선을 하듯,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설명까지 곁들였다. 일단 상영시간이 초읽기에 이렀기 때문에, 팝콘을 쥐어주고 상영관으로 밀어넣었다. 사촌동생이지만 얼굴을 본 건, 꽤 오래됐는데... 2시간 후에 영화 재미있었다는 문자가 그나마 안심이 됐다. 그리고 이틀 후 집에 들어와 내 미니홈피 방명록에는 장문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저 영화 어떻게 봤는지 알려달라는 말이 부탁으로 들렸나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13일(일) 오후 23:52에 미니홈페이지에 남긴 영화감상평



#3. 방명록
작년에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왔었는데 올해도 또 오게 되었어. 사실 여성의 인권에 대해 크게 문제의식을 느끼거나 생각해 본 적은 그다지 없는 것 같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영화제 시즌마다 같이 가자는 사람이 생겨가지고 말이지... 게다가 올해는 오빠도 여기 자원활동가로 참가했다고 하고 ㅋㅋ

왠지 여성영화제라고 하면 페미니즘이나 그런 분위기가 강해 보여서 사람들이 그다지 많이 올 것 같지 않을 느낌인데 작년도 그렇고 올해에도 아주 대성황이더라. 많은 분들이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겠지?

올해 역시 참 좋은 작품이 많아서 뭘 볼까 고민을 좀 했어.(읭?) 다행히 같이 온 언니가 미리 조사를 해온 덕에 생각보다 결정하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ㅋㅋ 그래서 보기로 한 영화가 <독일, 창백한 어머니>라는 작품이었어.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있는 독일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였는데, 전쟁의 참혹함과 전쟁 당시 독일인들의 아픔, 그리고 특히 여성들이 겪어야만 했던 문제들을 충격적인 영상과 여러 상징들로 생생하게 보여줬던 것 같아.

영화를 관통하는 전쟁이라는 큰 주제자체가 남성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어. 내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감독은 영화 속의 몇몇 장치들을 통해, 예를 들면 남편이 혼자서 옷을 못 벗어서 아내에게 도와 달라 하는 장면이라든지, 처음 전장에 나갔을 때 사람을 죽이지 못하고 우는 모습을 보이던 남편의 모습에 대조하여 아이를 안고 피난살이를 하며 강하게 고난을 헤쳐 나가던 아내의 모습 등을 보며 연약하고 유연하게 보이지만 그래서 더욱 강해질 수 있는 여성상을 제시하지 않았나 싶어. 하지만 그건 전쟁, 그리고 남편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고 해야 하나...

특히 여주인공의 왼쪽 얼굴이 안면마비가 되었을 때 그 때문에 생니를 모두 뽑아내고 피를 토하던 모습이 젤 기억에 남아. 아마도 분단된 독일의 모습과 그에 따른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영화가 끝난 후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는데 참 유용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 사실 영화자체가 좀 어려운 편이라 대부분의 내용을 나의 주관대로 해석하게 되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지 모를 때가 많았거든.

아무튼 작년에도 그렇고 여성영화제에 오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돼. 평소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기 않았던 문제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볼 기회도 되고, 물론 영화 작품들 그 자체도 참 좋고 해서.. 아마 내년에도 또 오게 되지 않을까 싶어. ㅋㅋ 여자로 태어난 이상 나도 이런 여성문제, 특히 인권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ㅋㅋㅋ 매년 봄마다 정말 좋은 경험을 하고 가는 것 같아!                  



웹데일리 자원활동가 신동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