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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스크린 안에서 카메라 뒤에서 힘을 잃는 여성들

12번의 순환을 마치고 13회를 준비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주변의 목소리에 귀를 바짝 대 보았습니다.
'여성영화제에 바란다'는 기획 시리즈의 두 번째 포문을 열어주신 분은 <귀><친구사이?>의 김조광수 감독과 <어떤 개인 날>의 이숙경 감독님입니다. 지난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인 기획제작 프로젝트 '피치&캐치' 극영화 부문 아트레온상과 관객상을 수상한 김조광수 감독님이 들려주는 여성 영화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활개치듯 공간을 마음껏 누빌 13회 영화제, 새로운 2011년을 열어갈 여성영화제는 앞으로도 뜨거운 애정과 차가운 비판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1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새로운 물결] 섹션에 상영되었던 <땅의 여자>(위), <경>(좌), <파주>(우) 스틸 사진

"즘 왜 이래, <전우치>도 그렇고 <의형제>도 그렇고!! 요새 한국영화에 여자 캐릭터가 없잖아, 여자 캐릭터가!” 윤성호 감독의 인디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에 나오는 대사다. 한국영화에 여성 캐릭터가 그렇게 없나?

며칠 전에 만났던 여성 배우 A씨의 매니저도 같은 얘기를 했다. 몇 년 사이 한국영화에 여성 배우가 할 만한 캐릭터가 많이 줄었다고. 그래서 방송 드라마 쪽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그마저도 매력적인 건 드물다고 하소연을 했다. 오, 그런가?
검색을 해보니 답이 금방 나왔다. 2010년에 주목을 받았던 한국영화들의 상당수는 남성 배우가 주연을 맡았던 것들이었다. <의형제>, <악마를 보았다>, <아저씨>, <부당거래>, <황해>. 음, 그렇군. 그나마 가을 들어서 <시라노 연애조작단>이나 <쩨쩨한 로맨스> 같은 로맨틱코미디 영화들이 나와 주었고,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시>가 있어서 위안이 좀 되었을 수 있지만 정말 예전 같지는 않은 게 틀림없다.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을 살펴보니 문제가 더 심각해 보였다. 상업영화는 물론이고 독립영화까지 포함해도 여성 감독들의 작품 활동이 눈에 보이게 줄어들었다. 한국영화의 큰언니쯤 되는 임순례 감독이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한국독립다큐멘터리계의 큰언니 홍형숙 감독이 <경계도시 2>를 내놓았지만 2010년에 개봉된 한국영화 140편(독립영화까지 포함한 것이다) 중 여성 감독의 작품은 10편이 채 되지 않았다. 어, 심각한데!

그러고 보니 우리 회사 청년필름이 제작하고 있는 영화도 그랬다. 올 여름 개봉을 목표로 촬영 중인 영화 <의뢰인>은 변호사와 검사, 그리고 사건을 의뢰한 피고인 셋이 벌이는 법정 스릴러 영화인데 그 셋이 모두 남성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은 피고인의 부인과 장모 그리고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 정도이고 조연이라고 얘기하기도 힘든 단역들이다.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감독들도 마찬가지였다. 남성 감독은 여섯이었는데, 여성 감독은 고작 둘이었다. 어라? 남 얘기가 아닌데? 프로듀서는 남성이 하나에 여성이 셋인데 왜 이렇게 된 거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국영화에 기획의 개념이 자리 잡은 1990년대에는 여성 관객들을 겨냥한 영화들이 주를 이루었고 이른바 페미니즘 영화라는 딱지가 흥행 보증수표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극장에 가면 여전히 여성 관객들이 넘쳐나고 있고 한국영화의 부흥을 일궈낸 여성 프로듀서들이 여전히 맹렬히 활동하고 있는데 스크린 안에서 그리고 카메라 뒤에서 여성들이 힘을 잃고 있는 이유는 뭘까? 궁금하다. 나만 궁금한 건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답을 찾고 싶은 마음에 혼자 머리도 굴려 보고 자료도 찾다가 생각한 건데, 이거 공개적인 자리에서 얘기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러면 좋을 것 같다. 오, 그러니까 여기 1997년에 문을 열어 올해 13회를 맞이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딱 맞춤이다. 세상의 절반이 여성이고 한국 관객의 다수가 여성이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절대 다수가 여성이 아닌가. 그러니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한국영화 속에서 존재감을 잃어가는 여성들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오호, 난 왜 이렇게 머리가 좋은 걸까? 어? 그러고 보니 ‘국제’영화제네. 그럼 안 되는 건가?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얘기를 다루는 건 너무 지엽적인 것이 되는 건가? 오, 어쩌지? 난 왜 이렇게 머리가 나쁜 걸까? 에이 어쩌나. 아, 맞다! 혹시 우리 나라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의 얘기까지 듣게 된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아, 난 역시 똑똑해! 하하하.


- 김조광수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