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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자원활동가의 눈 : “로망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세상이에요.”

Herstory에 연재될 글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2008년 10주년을 맞아 제작했던 기념 백서 <<여성, 영화 그리고 축제!>>의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기념 백서 <<여성, 영화 그리고 축제!>>는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_보다 _ Records>에서는 1회부터 10회까지 개/폐막식을 비롯한 국제포럼 등의 행사와 상영작들이 총 망라되어 있으며 <_말하다 _쓰다>는 여성영화제의 10년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있습니다. <_Perspectives _Herstory>는 <_말하다 _쓰다>의  영문버전입니다. 
Herstory는 여성영화제의 역사를 기록한
<_말하다_쓰다>에 있는 글을 지속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2006년 8회 신촌 아트레온 열린광장에서 공연한 '유자차는 어항'


“로망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세상이에요.”

이것은 부끄럽지만, 제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공연에 출연한 ‘유자차는 어항’ 밴드의 베이시스트인 내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한 인터뷰에서 내뱉은 말이다. 로망이라는 것, 가끔은 철없는 낭만주의자의 전유물이기도 하고, 무언가 다쳐본 적 없는 젊은이의 치기 같기도 하다. 하지만 때로는 가끔 현실이 되어서 포마드 느낌이 잔뜩 나는 느끼함을 벗고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로망의 다른 이름과 얼굴을 발견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현재형 추억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자활 중독증, 소통을 배우다
‘자활 중독증’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미 많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화제의 자원활동가들을 보고 있노라면 꽤나 익숙한 얼굴을 쉽게 발견하기도 한다. 몇몇의 친구들은 영화제의 자원활동가를 하면서 어떤 마법에 빠지고, 그 매력을 잊지 못해서 꾸준히 영화제 자원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헤어 나올 수 없는, ‘자활 중독자’라 불린다. 나도 그러한 친구들 중의 하나였다. 채워나가면 갈수록 좀 더 많은 세상과 만나고 그런 즐거움이 내 안에 채워진다는 느낌이었다.
자활 중독자인 나에게 여성영화제는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여성이라는 화두를 곁에 두면서, 여성과 영화라는 꽤나 이질적이고도 유려한 조합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자원활동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그 현장에 직접,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활동하게 된 팀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이벤트 팀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다양한 여성단체들의 크고 작은 활동들을 체험했고, 수동적인 역할이 아닌 능동적인 주체로 활동할 수 있었다. 다른 자원활동가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선곡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갔으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작게나마 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자원활동을 통해 얻게 된 것 중에서 그 무엇보다도 가장 감사한 것은, 무겁고도 경쾌한 친구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품었던 여성과 세상에 대한 의문점들을 말하고 들으면서, 소통이라는 묵직한 단어에 대해서 떠올렸다. 자원활동이라는 것은 자칫하면 일회성 만남이나 빛나는 추억 만들기로 그치기 쉽다. 하지만, 어떤 만남은 때때로 자신의 마음의 키를 키워주는 만남으로 바뀌기도,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거울 같은 친구들 만나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들과 함께 세상 속의 여성 그리고 자신 속에서 자라나는 여성과 대화를 나누면서, 책 속의 여성이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있는 이곳을 살아내고 있는 여성을 바라볼 수 있었다. 소통이라는 것은 결국 같은 모양의 마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각자의 마음들을 유연하게 연결하는 단단한 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자꾸 자라날 수 있는 꿈을 꾸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어쩌면 간단했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해내기에는 너무 힘든 소통이라는 것을 배우며, 난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소통이라는 꿈을 꾸는 사람이 되었다.


안으로 꾸던 꿈, 밖으로 나와 무대를 만나다
 
                                                                                                         
사진 : '유자차는 어항' 공연 스틸

7회의 자원활동을 통해 만난 자원활동가 동료들과 함께 ‘
유자차는 어항’이라는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원래부터 음악을 해왔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단지 음악이라는 로망을 가지고 있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영화제의 마지막 날, 온 밤을 새우며 나누었던 대화들 속에서 우리가 안으로만 품었던 꿈들을 현실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했고, 악기를 구입해서 스스로 배우기 시작했다. 화려하지도 현란하지도 않았지만 우리들의 연주는 항상 즐거웠다. 직접 가사를 쓰고 노래를 만들어 나가면서 우리다움, 자신다움에 대해서도 표현하는 방법들을 알아가기도 했다 연습을 마치면 항상 가던 홍대 떡볶이 가게에서 늘 꿈을 꾸듯, 농담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우리의 데뷔 무대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로 하는 거야!’ 정말 농담처럼 했던 그말. 그말이 놀랍게도 현실이 되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처음으로 만나고, ‘유자차는 어항’이라는 이름의 밴드로 이어져가고 있던 우리들의 골방 속의 노래는, 그리고 꿈을 꾸던 우리들의 이야기와 여성영화제에서 자원활동가로 기념품을 팔고 관객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느낌들로 만들어진 우리들의 희로애락은 아트레온 열린 광장에서 제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무대를 찾는 여자들’의 한 팀으로 참여하면서 울려 퍼졌다. 운 좋게도 로망이 이루어지는 그 벅찬 느낌을 관객들도 함께 느끼셨는지 우리의 예상보다 더, 그리고 우리를 데뷔하실 수 있게 해주신 스태프들의 걱정보다도 더 많은 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

제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밴드 ‘유자차는 어항’의 멤버로서 공연할 기회를 가진 것뿐만 아니라 이벤트 팀의 자원활동가로도 다시 활동하게 되었다. 무대를 진행하고 관객들을 맞이하는 역할 외에 새롭게 하게 된 일은 출연하는 여성 드럼연주자들과 직접 여러 이벤트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사실 무대는 꽤나 낯선 공간이다. 하지만 동시에 마법이 걸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자원활동가 친구들과 안무를 짜고 기타와 같은 소품들도 만들어 내면서 수군거리던 쑥스러움과 걱정들이 무대 위에서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어떤 친구는 엄청난 스피드의 헤드뱅잉을 했고, 또 한 친구는 스티로폼으로 만든 기타를 이로 물고 바닥을 뒹굴 거렸다. 가수 장윤정의 노래 ‘짠짜라’에 맞춰서 모두 춤을 추기도 하고 또 부채춤을 추기도 했다. 나도 가수 거미의 노래 ‘어른 아이’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밴드 공연에 이은 두 번째 무대였지만 설렘은 남달랐다. 밴드공연이 우리의 꿈이었다면, 춤을 추게 된 무대는 나만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춤을 추는 걸 좋아해서 홀로 집에서 음악에 몸을 맡기던 내 작은 기쁨을 무대를 통해 관객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음악에 따라 춤을 추니 음악은 몸 안에 가득 차올랐다. 터질 듯이 그리고 음악 속에서 수영을 하듯이. 그 공연 후에 어떤 남성분에게 싸인 요청을 받는 부끄러운 영광도 있었다.

어떤 꿈들은 집 안에만 감추어져 있다. 사실 그 꿈이 감추어진 곳은 집이라는 공간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광활한 곳의 높은 문턱일지도 모른다. 마음의 벽을 넘어서 밖으로 나간 꿈은 보이는 자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큰 용기였고, 도전이었고, 그것을 통한 즐거움이다.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큰 용기였고, 도전이었고, 그것을 통한 즐거움이다. 2006년의 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나는 두 개의 벽을 한꺼번에 넘어설 수 있었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
7회,8회 그리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나와의 인연은 9회까지 이어졌다. 이전까지 해오던 이벤트 팀이 아닌 상영관 매니저로서 일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내가 맡게 된 상영관은 개막식과 폐막식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다른 상영관보다 많은 자원 활동가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고, 많은 관객들이 찾아오셨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에서는 많은 이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상영관 매니저는 나에게 낯선 역할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게 지워진 책임감이 여태까지 느꼈던 즐거움에 대한 기대보다 앞서 무겁게 다가왔다. 영화제의 중심역할을 하는 상영관에서는 무엇보다도 관객과 의소통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관객 모두의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때론 일부 관객들과 난처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 그런 관객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다시 영화제의 상황을 이해시켜드려야 하는 문제들이 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들이 영화제를 만들어 가고, 어우러져 즐기기 위해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도 많았다.
가장 소중한 기억은 영화 <Out: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의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었다. 성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영화 속 세 명의 십대 주인공들이 당당하게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하는 시간이었다. 관객들의 마지막 질문에 답하면서 그 아이들 중 한 아이의 어머니께서 마이크를 들고 '그래도 자랑스럽다' 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마법이 일어난 것 같은 전율을 느꼈다. 200석 꼭 차있던 많은 관객과 진행하던 스태프, 그리고 주인공들과 어머니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 객석의 맨 앞에서 진행을 하고 있던 나에게 그 울음의 파도가, 쏟아내는 감정의 물결이 밀려왔다. 레즈비언,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딸의 성정체성과 어머니의 사랑이 무대 위에서 끌어앉은 순간에 우리들의 주인공은 자신의 가면을 벗어 던졌다. 200명 남짓의 관객들 속에 레즈비언 정체성에 대해서 껄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분명히 전해졌으리라고 믿는다. 그들의 진심도 분명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책 속의 그 어떤 문장이나 가르침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동성애에 대한 그 껄끄러움에 대해서 되돌아보려는 중요한 순간이었다고도 믿는다.

로망은 아직 이곳에 있어요!
세 번의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지나온 나에게 남아있는 단어는 이 ‘로망’이다. 그리고 내가 만난 그 ‘로망’은 현재형으로 살아 있다. 점점 변해가는 시대에 ‘여성’을 이야기 한다는 것, 그리고 고정관념들 사이에서 여성의 새로운 꿈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로망’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로망’은 허망한 꿈일 뿐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망’은 아직도 이곳에 있다. 내가 무대를 만나 나의 ‘로망’이 현실이 된 것처럼. 아직도 꿈틀거리고 더 나아가려는 로망이, 현실이 될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 설레지 않는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로망이 현실이 되는 놀라운 세상이.


-  권지혜  7회·8회 이벤트 팀, 9회 상영관 매니저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