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이 사회에서 본질적인 것처럼 공고하게 구성되어 있는 억압적 성별규범에 대항하는 문화 운동의 장으로 자리 매김 해 왔다. 특히 남/녀의 선명한 이분법 속에서 이성애 중심적으로 구성되어 온 기존의 규범들은 다양한 정체성을 억압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여성영화제는 이런 구분을 교란시키는 퀴어 영화를 소개하면서 문제적 사회에 균열을 내는 작업들을 계속해 온 것이다. 이 작업을 더욱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그 저항의 힘을 ‘퀴어’의 이름으로 결집해 낸 것이 바로 ‘퀴어 레인보우’ 부문이다.
올해 ‘퀴어 레인보우’에서는 무엇보다 레즈비언 영상제작 단체 혹은 레즈비언 감독이 제작한 독립 퀴어 영화에 주목한다. 지난 해 <오버 더 레즈보우>을 첫 작품으로 활동을 시작한 퀴어 공작소 LSD의 과 사포의 <우린 레즈비언이잖아>는 트렌드로서의 퀴어 코드와 진부한 커밍아웃 스토리를 넘어 한국에서 레즈비언으로서 살아감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한다. 여기에 ‘걸즈 온 필름’에서 소개되는 <레즈비언 파이터>와 <색안경을 벗어라>, 아시아 단편경선 본선진출작인 다이포의 <친구니까 말할게> 등 한국지형에서 레즈비언 영상단체를 표방하거나 작품을 통해 커밍아웃을 하면서 사회에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부치 제이미>와 <틱 톡 룰라바이> 역시 지속적으로 레즈비언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영상 작업을 해 온 감독들이 저예산으로 제작한 독립영화이다. 이 작품들은 로맨틱 코미디의 표면 밑으로 사회에서 강요하는 여남의 고정된 이미지와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는 젠더 역할을 비웃고 이성애적 사회규범을 비튼다. 이런 작품들은 하나의 세련된 취향이나 유행에 머무는 동성애 재현이 아니라 퀴어 정치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작품으로서 지지할 만하다. 생물학적으로 주어지고 삶을 통해 학습된 성별을 거부하는 트랜스젠더에 관한/의한 작품 역시 이 부문에서 소개된다. 생물학적 남성이라는 이유로 MTF 여성을 남자 감옥에 수감하는 ‘가혹행위’를 고발하는 <잔인하고 비정상적인>과 MTF 레즈비언을 다룬 자전적 다큐멘터리 <여자를 사랑한 트랜스젠더>, 그리고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대만 FTM 남성을 따라간 <그가 사는 법>이 그 세 작품이다. <그가 사는 법>은 세 명의 한국 FTM 남성을 담고 있는 6기 옥랑문화상 수상작 <3XFTM>과 함께 여성영화제에서 소개하는 유일한 ‘남성에 대한 영화’이다. 여성영화제는 성적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면서 FTM 남성과의 연대를 도모하고, 동시에 생물학적인 여성의 몸이 경험했던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억압과 학습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FTM 남성에 관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10개국 16편의 퀴어 영화를 상영하는 ‘퀴어 레인보우’에서는 이 외에도 인종정책이 막 시작되던 1950년대 남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레즈비언 멜로드라마 <보이지 않는 세상>을 비롯, 레즈비언의 결혼, 출산, 양육, 커밍아웃, 젠더 교란 등을 다루는 다양한 퀴어 영화를 상영한다. 차별금지법 훼손에 대항한 ‘성소수자 차별저지 긴급행동’이 보여줬던 가능성처럼, 여성영화제 ‘퀴어 레인보우’가 성별 고정관념과 이성애 규범에서 비롯된 억압을 돌파하고 이를 벗어난 다양한 정체성을 축하할 수 있는 공동체적 대항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프로그래머 손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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