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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SIWFF]

더이상 남이 아닌 우리들의 권리_"이주여성들이 죽지 않을 권리"

지난 7월 18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이주여성들이 죽지 않을 권리" 라는 이름으로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들의 추모집회가 열렸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150여명의 이주여성과 선주여성들이 추모집회에 참여하였습니다. 한국땅에서 죽어간 이주여성들의 추모집회를 지켜보는 내내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가정폭력으로 상처받으며 소리없이 괴로워하고 있을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언니일수도 혹은 짧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총총걸음을 걸으며 무심한듯 지나가는 직장인 여성일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이주여성들이 죽지 않을 권리", "가정폭력으로 죽지 않을 권리"를 외치며 추모집회를 여는 날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길 바라며 2011년 다문화영상아카데미 참여자이며 제1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자신의 작품인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상영하기도 한 레티마이투씨(현 (사)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이주여성팀장)의 글을 소개합니다.

 

 

이주여성들이 죽지 않을 권리

 

 

올해도 어김없이 죽어간 이주여성들의 이름을 부릅니다.

 

2007년 3월, 대구에서 살았던 故레티김동(베트남), 충남 천안에서 故후안마이(베트남), 2008년 3월, 경북 경산에서 故쩐타인란(베트남), 2010년 3월 강원 춘천에서 故체젠다(캄보디아), 2010년 7월 부산에서 故탓티황옥(베트남), 2010년 9월 전남 나주에서 故강체첵(몽골), 2011년 5월 경북 청도에서 故황티남(베트남), 2012년 3월 강원도 정선에서 故팜티로안(베트남), 서울 강동구에서 故리선옥(한국계 중국), 강원도 철원에서 故김영분(한국계 중국).

 

이들은 이름과 출신국, 나이, 살아 온 환경과 한국 사회 이해수준이 모두 달랐지만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남편의 폭력으로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는 감금을 당하다, 누구는 자국 친구를 보호하다 칼에 찔려, 누구는 높은 아파트에서 떨어져, 누구는 보험금을 노리고 수면제를 먹인 방화에, 누구는 임신 중이거나 출산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짧은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 출처: (사)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가해자 남편들은 정신병력이 있는 경우도, 알코올 중독이 의심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저 돈에 눈을 멀어 아내를 죽이거나 혹은 그냥 기분이 나빠서 술을 마시고 와서 아내를 죽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술 때문에 그랬다’고 발뺌을 하면서 말입니다.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책임의식도, 실질적인 경제적, 사회적 능력도 없음에도 그저 장가보내려는 부모의 욕심에 이끌려 국제결혼을 한 경우도 꽤 있습니다. 결혼이 한 가족을 구성할 책임을 갖는 것이라는 기본적인 사실보다 ‘결혼은 해야 한다’는 무조건적인 생각에 기초하여 결혼에 대한 책임성 없이 국제결혼을 한 한국 남자들이 있습니다. 결혼했으면 자신의 가족에 대한 책임을 쳐야 한데 왜 이렇게 잔인하게 자기의 반을 죽일 수 있었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남편의 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들은 나처럼 고향을 떠나 한국에서 생활을 하고자 온 여성들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진취적인 꿈을 꾸며 한국에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결혼과 동시에 죽음이었습니다. 그들이 한국에서 짧은 삶을 사는 동안 고향을 자주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인데, 또 다시 고향에 발을 딛지 못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과 친구, 이웃에게 작별 인사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 한 채 사늘한 시체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들은 혼자서 외로움과 힘겨운 삶을 견디며 고향에 돌아가는 날을 기다리며, 행복을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원하면서 살았던 이주여성들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고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눈물을 흘렀고 공포에 질렸는지 우리가 짐작할 수 없을 겁니다. 그들 중에는 젊은 나이에 결혼하여 아직도 결혼 생활이 무엇인지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채, 한국에서 새 삶에 대한 꿈을 펼치기는커녕 시도도 하지 못 한 채 싸늘한 죽음이 되어 버린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사진 출처: (사)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국제결혼에서의 가정폭력은 한국인 부부 사이의 가정폭력과는 다른 모습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남편이 도와주어야만 체류 연장을, 국적이나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이주여성들의 불안정한 체류 문제가 그것입니다. 체류 연장을 위한 남편의 동의는 남편의 무기가, 권력이 되어 이주여성들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됩니다. 폭력을 당해도, 합법적인 체류를 위해 폭력을 가한 남편을 떠나지 못 하게 만듭니다.

 

여기에는 가정폭력을 ‘부부 싸움’ 정도로 생각하는 한국 사회 분위기도 있고, 폭력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해야 할 경찰도 가정폭력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남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이웃들의 인식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주여성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감아버립니다. 가정폭력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조용한 이웃들이 있어서 가정폭력은 더 힘을 발휘합니다.

 

경찰이 출동해서 가정폭력을 엄격하게 다룬다면, 가해자들이 지금처럼 쉽게 아내를 죽도록 때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웃들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알고 적극적으로 신고를 한다면 남편들이 반복적으로 폭력을 가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남편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합법적인 체류를, 국적과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면 폭력으로 참고 사는 여성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 여성들 역시 심각한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으며, 때로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봅니다. 가정폭력은 이주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고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과 환경이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다 소중한 사람이고 귀한 사람들입니다. 지난 7월 18일(수)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故리선옥, 故김영분씨를 위한 추모집회에는 이주여성들이 처지를 말해주듯 이런 구호가 등장했습니다.

 

‘이주여성들이 죽지 않을 권리’, ‘때리는 남편 이웃에서 신고 합시다.’

 

추모집회의 구호처럼 ‘체류권 때문에 맞아도 참고, 괴롭혀도 참고...’ 하는 이주여성들이 없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들의 이름이 더 늘어날까봐 두렵습니다.

 

Le Thi Mai Thu (레티마이투)

(사)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이주여성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