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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이 장면을 보라] 매혹과 깨달음의 순간 <인 블룸>




매혹과 깨달음의 순간, <인 블룸>(2013)





“마치 체코의 유대인이 독일어로 글을 써야 하듯이, 혹은 마치 우즈베키스탄인이 러시아어로 글을 써야 하듯이. 구멍을 파는 개처럼 글을 쓰는 것, 굴을 파는 쥐처럼 글을 쓰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자기 자신의 저발전(低發展)의 지점을 찾아내는 것, 자신의 방언을, 자기 자신의 제3세계를, 자신의 사막을 찾아내는 것.”          -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카프카-소수적인 문학을 위하여




     


가끔 머리를 싸매고 몇 권의 책을 읽으며 어렵게 이해하려 애썼던 이론적 개념을 한 순간의 감각적 경험으로 뒤늦게 깨닫게 되는 근사한 경우들이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봤던 <인 블룸> (나나 에크브티미슈빌리, 시몬 그로스, 2013)은 그러한 드문 경험을 선사해준 영화였다. '소수문학'이란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가 제안했던 개념으로 주변적 소수자들이 주류 언어를 사용해 그것에 균열을 내고 제3의 영역을 찾아냄으로써 혁명을 가능케 하는 문학을 가리킨다. 그런 면에서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주류의 영화언어에 균열을 내는 여성영화는 소수영화(minor cinema)라 할 수 있다. <인 블룸>은 오랫동안 규명하고 싶었던 ‘소수영화로서의 여성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단 하나의 장면으로 답을 해준 영화였다. 



이 영화는 1991년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직후 3-4년간의 내전으로 거의 무정부 상태에 있던 조지아(구 그루지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부족한 식량 배급에 의존해야 하고 어느 곳에서나 쉽게 총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폭력이 무감각해진 격동의 시대에 10대의 두 소녀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우정을 다져간다. 당차고 정의로운 나티아는 친구 에카가 남자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선생님이 타당하지 않은 요구를 할 때마다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맞선다. 그러나 여성의 성적 순결을 강요하는 남성 중심적인 조지아 사회에서 나티아가 그녀를 쫓아다니던 남자에게 납치를 당하고 강제로 결혼까지 하게 되자 에카는 실망과 당혹감에 휩싸인다. 



                남자친구로부터 받은 총을 들고 있는 나티아. 총은 긴장감 형성을 위한 서사적 장치이자 폭력의 알레고리이다.



영화 초반에 남자친구에게서 선물 받은 나티아의 총은 영화 내내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서사적 장치이자 파워와 폭력의 알레고리다. 소녀들이 과연 저 총을 사용하게 될 것인가? 언제 사용할 것인가? 사용하게 된다면 그 결말은 파국일까?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 지난한 폭력을 끊을 방법은 무엇이 있는가? 나는 나티아를 납치한 남자와 부모, 친구들이 한 소녀의 인생에 가해진 엄청난 폭력에 눈 감고 한데 어우러져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는 결혼식을 보며 흔한 강간복수극처럼 그 총을 어떤 자비 없이 사용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였다. 그러나 다음 진행된 장면은 그 상상을 넘어선 것이었다. 



에카 역시 참지 못하고 나티아가 숨겨놓은 총을 사용하려 한다. 그런데 나티아는 에카를 말리며 ‘나를 잘 아는 가장 친한 친구마저 내 결혼식을 축하해주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겠냐’라고 반문한다. 폭력적인 남편과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해온 아버지 사이에서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나티아를 바라보던 에카는 갑자기 일어나 춤을 춘다. 그리고 사람들도 에카가 추는 춤의 강력한 힘에 홀리듯이 이끌려 에카를 원으로 둘러싸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에카가 춘 춤이 조지아 전통 춤에서 여자가 아닌 남자 역할의 춤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놀랍게도 에카의 춤으로 인해 남성폭력의 힘에 지배되어 있던 연회장은 어떤 말없이도 그녀들의 힘이 느껴지는 장으로 변신한다. 에카는 자신들을 고립시키지도, 남성 중심적 폭력에 굴복하거나 그것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 결혼식을 제3의 영역인 그녀들의 공간으로 바꿔 버린다. 



                        나티아의 결혼식에서 춤을 추는 에카. 에카는 춤을 통해 나티아의 아픔을 공유하고 그녀와 연대한다.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의 독립한 직후의 조지아를 그린 <인 블룸>의 나티아와 에카.



에카는 춤을 통해 부당함을 알면서도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나티아의 아픔을 공유하고 그녀와 연대하며 그녀를 희생자가 아닌 생존자로 대우한다. 에카는 그 결혼식이 아닌 나티아를 축복한다. 에카가 추는 남성 역할의 춤은 남성 폭력에 대한 소수적 저항이며, 그들에게 빼앗긴 파워를 주류 남성의 언어를 사용해 되찾으려는 시도다. 그것은 매혹과 깨달음의 순간이자 들뢰즈가 말한 언어의 탈영토화였다. 그 순간은 관객의 환상을 충족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먼, 환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통과하는 장면의 연출이었다. 어떻게 남성적 폭력에 소수자인 여성들이 연대하면서 대항할 것인가, 폭력에 대항해 우리들의 파워를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루마니아 뉴웨이브를 이끌고 있는 올렉 무투(Oleg Mutu)의 빛바랜 듯한, 아름다우면서도 서늘한 촬영에 힘입은 이 강력한 시적 장면은 그 자체로 눈부시다.



조혜영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