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8일 동안 50회가 넘는 GV(관객과의 대화)가 열렸습니다.
이 중 네 분의 GV 현장을 Q&A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몸에서 ‘석유’가 나온다면, 축복일까 질병일까
수잔 이라바니안 감독 <누수> GV
만약 몸에서 ‘석유’가 나온다면 어떨까? 서아시아의 대표적인 산유국이면서 보수적인 성관념을 가지고 있는 이란, 푸지예는 어느날 몸에서 ‘석유’가 흘러나오는 기이한 현상을 겪게 된다. 그녀에게 이 검은 <누수>는 과연 축복일까? 아니면 질병일까? ‘석유’를 이용해 이란을 떠나 유럽에서 새로운 삶을 찾으려는 푸지예, 푸지예를 돕는 불법이민자 세이드,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하는 푸지예의 언니, 세 사람이 겪는 혼란과 고난을 담은 영화 <누수>. 서울의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이란에서 온 수잔 이라바니안 감독, 그리고 권은혜 프로그래머가 GV에 함께했다.
한국에서도 아랍영화제가 매년 개최되지만, 이란의 영화를 만날 기회가 드문 것이 사실이다. 특히 여성 감독님을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이란처럼 헤게모니적 산업(국영 석유 사업)이 있지 않은 나라의 관객들과 이런 교류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저도 감사하다.
어떤 계기로 몸에서 석유가 나오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냈는지 궁금하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할 때 만들었던 단편소설에 기반하고 있다. 쌍둥이 자매가 주인공인데 한 명은 몸에서 기름이 나오고 한 명은 평범하다는 설정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제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해야겠다. 한 친구가 월경을 시작했는데, 생리혈이 아니라 미지의 액체가 나오고 있다며 나를 설득하려고 했던 적이 있다. ‘우리의 몸에서 나오는 미지의 무언가’라는 소재를 그때부터 계속 간직하다가 영화로 만들게 되었다.
몸에서 석유가 나오는 건 증조할머니로부터 유전되었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할머니는 석유를 팔아서 생활을 했다. 그러나 현대의 주인공은 석유를 이용해서 유럽으로 이주를 하려고 한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어떤 변화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인지
이 모든 일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그리고 현재를 구분 짓는, 역사를 대하는 방식을 고정하려 하지는 않았었다. 현실에 실제 존재하는 ‘석유’라는 소재가 있고, 그 ‘석유’를 직면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아내는 데에 집중했다.
영화를 보면서 석유가 월경, 월경혈을 은유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푸지예에게 ‘석유’는 어떤 혜택이기도 하지만 오염된 몸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석유’에서 여성의 재생산권이 상상된다. 여성의 재생산권은 권리이자 이득이면서도 타인에게 이용되고 때로는 버려지는 현실을 고려했을 때, 여성인 주인공을 돕는 남자 ‘세이드’의 의미와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매우 좋은 질문이다. 우선 주인공인 푸지예에 대해서 설명해야 할 것 같다. 푸지예는 독특한 캐릭터이다. 여성의 권리라든지 힘이 박탈당한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녀에게 어떤 힘을 부여하고 싶었다. 그래서 푸지예는 우리가 쉽게 만들어낼 수 없는, ‘석유’를 만드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동시에 그녀가 이런 능력을 통해 자본주의와 점점 가까워지면서 일종의 딜레마에 봉착한다. 세이드 같은 경우에는 푸지예의 말을 모두 수용하는 인물이다. 자기 몸에서 기름이 나온다고 말했을 때도 그는 받아들이고, 이란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도 그는 받아들인다. 한 치의 의심이나 반대 없이 수용하고 본인이 도와주려 한다. 서사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서사를 정리하고 푸지예가 다음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믿을 수 없는 능력을 무엇보다 이란을 떠나는 데에 이용하려는 주인공의 상황이 슬프게 느껴졌다. 아프간에서 이란으로 이주한 세이드의 사연도 그렇다.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을 많이 반영한 것 같다.
그렇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실행에 옮기려 한다. 한편 이란에서는 아프간에서 온 불법 이민자들이 많이 와있다. 저도 그들과 교류를 하고 있는데, 이란에서의 생활에 만족하면서도 불법 이민자의 신분 때문에 바깥에서 활동하는 데에 상당히 많은 제약이 따르고 있다. 영화를 통해 그들이 꿈꾸는 나라 안과 또 이란 시민들이 꿈꾸는 나라 바깥의 상황 두 가지를 비교해보고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영화에서 푸지예와 그녀의 가족을 믿어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이란의 시민이 아니라 아프간에서 온 불법 이민자 세이드라는 설정에 주목해야 한다. 이웃들이 쌀쌀맞게 대하거나 무심한 반응을 보여주는 한편 세이드는 타인의 일임에도 공감하고 함께 행동한다. 세이드를 연기한 배우가 우리와 함께 생활하며 영화를 제작했는데, 실제 성격도 캐릭터와 똑같다. 항상 남을 돕고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푸지예를 연기한 배우의 표정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어떤 배우이고 어떻게 캐스팅 했나
푸지예는 배우 아르믹 가르비안을 염두에 두고 만든 캐릭터이다. 영화에 등장한 배우들은 모두 비전문 배우로 내 친구이거나 가족, 주부들이다. 내 남편도 배우로 출연했고 여기에 와있다. 대본을 쓸 때부터 아르믹을 떠올렸고, 영화 제작에 돌입하면서 캐스팅 제안을 했다. 배우 경험이 없어 처음에는 자신이 없다고 했는데 우리가 함께해낼 수 있다고 제가 설득을 해서 출연하게 됐다. 배우의 얼굴에 드러나는 불확실성, 불안감이 좋았다.
글 윤다은 자원활동가
사진 서민지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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