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 예능에서 보여주는 우아한 육아는 말 그대로 판타지다. 아이를 돌보는 일상은 전쟁터와 다름없다.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는 깡패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40세의 안나는 무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변호사인 남편은 일은 많지만 정작 벌이는 변변치 않아 안나는 늘 경제적 스트레스 속에서 산다. 파트타임으로 이탈리아어 강사 일을 하지만 그마저도 아이들 상황에 따라 동료에게 대리 수업을 부탁하기 일쑤다. 안나의 일상은 매일 반복된다. 세 명의 아이를 깨우고 먹이고 씻겨서, 학교에 데려다주고, 학교가 끝나면 방과 후 수업에 데리고 갔다가 집에 데리고 온다. 그리고 다시 씻기고 먹이고 재운다. 늘 시간에 맞춰 가야 하고 집안의 잡다한 일을 처리하고 모든 일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남편은 다른 여자, 그것도 안나의 친구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 안나는 그 사실을 막 알게 되었다. 정작 결혼 생활이 끝장날 사건이 발생했는데 안나는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남편과 이야기를 할 여유조차 없다. 남편이 그 여자랑 잤다는 말을 듣고도 고작 할 수 있는 일은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와 아이의 해열제를 사러 가는 일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혼자 있을 잠깐의 시간조차 쉽게 만들어내지 못한 채 무한히 반복되는 일상. 카메라는 안나의 옆에 바짝 붙어 꽉 짜인 채 반복되는 36시간의 그 숨 막히는 일상을 담아내고, 영화는 그 흔한 풀쇼트 한번 보여주지 않으면서 해체의 위기에 놓인 한 가정을 아내의 관점에서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영화가 창조해낸 리얼리티는 그렇게 여성의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결혼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선사한다. 헝가리 국립 필름 펀드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완성된 소피아 실라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며, 올해 칸영화제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작이다.
원데이 One Day
새로운 물결|소피아 실라기|헝가리|2019|99분|15세 이상|DCP|컬러|픽션
703 2019-09-05 | 11:00 - 12:39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7관
조지훈(리버스)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식데일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VENT] 한국영화 100주년: 여성주의 시각에서 다시 쓰는 영화사 (0) | 2019.09.04 |
---|---|
[GV현장] 수잔 이라바니안 감독 <누수> (0) | 2019.09.04 |
[21살 SIWFF, 그리고 나] IMF가 나에게 자유를 줬어요 (0) | 2019.09.04 |
[21살 SIWFF, 그리고 나] 인생 영화가 ‘우리들’에서 ‘벌새’로 바뀌었어요 (0) | 2019.09.04 |
[GV현장] 에나 세니야르비치 감독 <나를 데려가줘> (0) | 2019.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