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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SIWFF]

제주 문화예술기행을 다녀와서

She's coming!

I. 2박 3일 제주 여신기행 : 바람이 온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제주 문화예술기행은 처음 참여하는 여행이었다. 참여를 결정하기 며칠 전에 지인으로부터 미국여성운동가이며 미국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 편집장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연이 되려고 그랬을까. 이때에 나는 <감동의 습관>이라는 책의 표지를 찍고 있었다. 책 내용 중에 글로리아 스타이넘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짧게 인용되었다.

“50세를 맞는 느낌이 어떤가요?”
그녀는 단호하게 답했습니다.
“젊은 시절보다 더 행복하죠. 과거보다 덜 혼란스러우니까요. 지금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잘 알고 있어요.
디스코와 탭댄스, 특히 브레이크 댄스를 배우고 싶어요. 쉰이라는 나이가 당혹감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100살까지
살고 싶은 의욕을 갖게 하네요.
지나간 50년보다 다가올 50년이 더 좋을 것 같아요.”

 

글로리아 스타이넘 씨가 50세가 되면서 한 인터뷰였다. 지나간 50년보다 다가올 50년이 더 좋을 것 같다는 그녀의 말이 무척 인상적이다. 자신의 나이에 이처럼 당당할 수 있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제주에서 만난 그녀는 아름다웠다. 올해 77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에너지가 넘쳤다. 부드러운 아침 햇살 같은 에너지였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휴식을 취하기가 어렵지만 아침 햇살은 일, 휴식, 명상 등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아마도 세월을 건너온 자만이 풍길 수 있는 빛이다.
그녀는 제주 신화에 대해 진지하게 듣고, 그녀의 취재 수첩에 꼼꼼하게 적는다. 또한 강정마을의 처한 상황들을 들으면서 힘이 되어주겠다고 한다. 강정마을 구럼비에 앉아서 제주 바람의 기운의 느끼고, 강정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칼날 같은 심장을 세우는 사람들을 향해 짓던 미소는 아침 햇살이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혜경 위원장이 용눈이오름을 오르면서 ‘바람이 온다’라고 했던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과 교감이 이루질 때에 ‘바람이 분다’가 아니라 ‘바람이 온다’가 된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제주 문화예술기행은 사람과 자연이 교감이 이루어지는 여행이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그리고 여자들이 건너온 세월이 고운 아침 햇살처럼 빛난다. 바람이 온다.

- 글/사진 : 사진작가 김연미


II. 제주, 문화예술기행을 다녀와서 : She's coming

 ‘1년 중 가장 좋은 제주의 일주일’이라는 제주도민의 표현이 딱 맞아떨어지는 날씨였습니다.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를 외치며 제주공항에 내린 우리는 서울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들뜬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답니다.
5월 29일부터 31일, 2박 3일 일정으로 진행된 제주문화예술기행은 국내외 명사들은 물론, 전 지역에 걸친 여성들의 참가와 제주 현지 여성의 참여, 20대에서 60대까지의 다양한 연령대 분들이 참여해 지역과 나이를 넘어선 문화 네크워크가 가능하여 더욱 각별했던 시간이었습니다.

- ‘여성, 창조성, 문화 : she's coming’

‘아시아의 다보스포럼’으로 거듭난 국제 포럼인 <제주포럼>의 한 섹션을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주관하였는데요, ‘여성, 창조성, 문화 : she`s coming’라는 핫한 주제로 국내외 취재진과 주최 측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 기대를 반영하듯 준비된 좌석이 부족해 끊임없이 의자를 공수해야 하는 열기 가득한 현장이었는데요, 세계적인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스피치를 듣기 위해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선 객석의 에너지가 패널들과 소통되며 여성의 삶을 고찰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남자들이 여성들과 위계(rank)가 아닌 연계(link)를 해야 한다”는 화두로 던지며 문화를 형성하고 창의적 영감을 주는 연결자로서의 여성의 역할과 중요성을 언급하였습니다.

 

 

- 여성주의 명상의 세계로

미국 유니온신학대학의 여성주의 신학자 정현경 교수님께서 아침마다 명상을 진행해주셨는데요, 명상이라고 함은 보통 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정현경 교수님께서는 대지의 에너지를 모아 몸의 기를 순환시키는 동작들을 통해 스스로 치유하게 만들어주셨어요. 일정을 소화하느라 지쳐있던 심신을 아침마다 회복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 용눈이 오름, ‘온다 온다 온다’

화구의 모습이 용의 눈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용눈이 오름’의 정상에서 우리는 맑은 하늘과 탁 트인 오름의 바람을 맞으며 스카프 날리는 퍼포먼스를 했는데요, 바람을 따라 저마다 펄럭이는 다양한 패턴의 스카프가 멋진 작품이 되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충만감을 맛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혜경 집행위원장님께서 ‘온다, 온다, 온다’ 노래를 즉석에서 지어 부르시는 것을 시작으로 신명난 몸짓의 춤판이 벌어졌습니다. ‘온다’의 개념은 제주포럼에서 논의한 ‘she`s coming’이라는 주제의 연속성으로서, 서로의 이름을 호명하며 노래를 매기고 받는 동안 흥이 절로 돋아나서, 우리들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해군기지 건설로 상처받은 강정마을 탐방, 올레길 걷기, 비자림에서의 즐거운 소통, 가파도 둘러보기, 와흘본향당에서의 세레모니, 바바라 해머의 영화 <제주도 해녀> 감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많았는데 지면이 부족해서 다 전해드릴 수 없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네요. 내년에도 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의 기행을 꼭 마련하겠습니다. 그럼 내년에 다시 만나요, 여러분.

- 글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사진 : 사진작가 김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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