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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영화천국> 수록: 영화제 준비 과정을 말하다 (강바다 프로그래머)




* 영상자료원에서 발간하는 격월간지 <영화천국> 최신호에는 "영화 상영을 넘어 축제로! - 한국의 다양한 영화제" 라는 기획이 실렸습니다. 영화제 과잉의 시대,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국의 영화제들에 대한 리포트인데요, 저희 여성영화제에서는 강바다 프로그래머가 "하나의 영화제가 탄생하기까지"라는 제목의 글로 이 기획에 참여하였습니다. 강바다 프로그래머의 글을 공유합니다. 참고로, 이 기획의 다른 기사들을 보시려면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길 바랍니다.


[영화천국] 2015 01/02 vol.41







[영화제]하나의 영화제가 탄생하기까지

영화제 준비 과정을 말하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영화제’를 입력하면 분기별로 국내 및 해외영화제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다.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국제영화제도 있고, 일회성으로 진행된 프로젝트 영화제, 시상식 중심의 영화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아련한 영화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대표 영화제’로는 1996년부터 역사를 시작한 아시아 대표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 1997년 시작한 국내 유일무이 ‘판타스틱 장르’ 영화를 소개하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000년 후발 주자로 나섰으나 디지털, 대안, 독립 등 차별화한 프로그래밍으로 입지를 굳힌 전주국제영화제 등 3대 국제영화제를 주축으로, ‘특성화한 주제’로 개최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서울LGBT필름페스티벌, 퀴어영화제, 서울인권영화제, 서울국제사랑영화제, 장애인영화제, 서울노인영화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등이 있고, ‘영화 장르’를 대표하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인디애니페스트, DMZ국제다큐영화제, EBS 국제다큐영화제,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등이 있다.

이외에도 다수의 영화제가 전국에서 거의 1년 내내 개최되고 있는데, 각 영화제의 특성과 규모, 가치 및 방향에 따라 영화제 사무국 인력 구성과 준비 기간이 결정된다. 영화제 규모에 따라 일일 행사, 이틀 남짓 영화 상영을 진행하는 영화 상영회 및 일주일에서 열흘간 개최되는 국제영화제까지 다양하게 개최되고 있다.

평소 영화제 사무국에 근무한다고 이야기하면 보편적으로 받는 질문이 있다. 영화제는 얼마 동안 열리는지, 1년에 한 번 개최된다면 1년 내내 어떤 준비를 하는지, 팀 구성과 근무하는 인원은 얼마나 되는지, 프로그램팀은 어떤 업무를 하는지? 영화산업에 종사하고 있거나, 영화와는 관계가 없는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 모두 대개 비슷한 질문을 하고, 이에 답변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무척 놀라워한다. 그렇게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이 준비하는지 몰랐다는 것이 보통의 반응이다.

영화제 규모가 클수록 팀은 세분되고, 작은 규모의 영화제에서는 다양한 업무를 팀이 아닌 ‘담당자’로서 100가지의 업무를 동시에 진행한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기준으로 영화제 사무국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무국 전체팀의 업무를 총괄하고 영화제가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전체 스태프를 대표하는 사무국장과 행정 및 회계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팀을 주축으로, 집행위원회, 운영위원회 단위에서 시대의 쟁점과 영화계 주요 이슈 및 흐름을 바탕으로 다음 해의 영화제 주제와 방향을 기획하고, 이에 맞는 프로그램 섹션 및 상영작 규모와 부대행사, 예산 및 팀별 사업계획을 사무국에서 진행한다.

IT 관련 프로그래밍 업무와 혼동되곤 하는 프로그램팀은 영화제의 핵심인 ‘영화 상영’을 위해, 국내 및 해외에서 출품된 영화를 시사하고, 영화제 섹션(주제별 프로그램) 및 상영 작품(국내, 해외 작품)을 결정한다. 선정된 영화를 기준으로 영화제 기간의 상영 시간표를 계획하고, 상영작 자료(작품 사진, 감독의 력) 및 상영본(35mm 필름과 디지털 상영본)을 수급한다. 영화제 기간 중에는 각 상영작의 GV(Guest Visit・관객과의 대화), 포럼 및 부대행사를 담당한다. 상영작으로 결정된 영화의 DVD와 원어 대본 및 국문 대본으로 한글 자막과 영어 자막을 제작하고 영사하는 자막팀은 영화제 개막일 3개월 전에 합류해, 자막 파일을 제작하는 스파팅과 번역, 완성된 자막 파일을 극장에서 영사하는 오퍼레이팅 업무를 담당한다. 영화제 기간 중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하기 위해 35mm 필름과 디지털 상영본(DCP, HD, Digi-beta, DV, Blu-ray Disk)이 영화제 개막일을 기준으로 각 상영본이 두세 달 전부터 입고되는데, 기술팀은 입고된 상영작을 검수하고, 원활한 상영을 위해 사전 테스트를 하고, 더 좋은 상영을 위해 경우에 따라 상영본을 변환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영화제 기간 중에는 각 상영관 영사실에서 상영 기자재로 상영을 담당한다. 개막일 한 달 전에 국내 및 해외 매체를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해 영화제 주제 및 사업 방향, 상영 작품, 초청 게스트 및 부대행사 등의 정보를 홍보해 기사로 보도될 수 있도록 하고 영화제 트레일러 제작, 보도자료 작성 및 배포, 외부 인터뷰, 포스터와 현수막 등 옥외 홍보물을 제작하고 관리하며, SNS 및 프로모션 업무를 담당하는 홍보팀이 있다. 이벤트팀 초청팀 운영팀의 팀장 및 담당 팀원이 개막일을 기준으로 석 달 전부터 출근을 시작해 이때부터 영화제 개막을 위해 달리는, 모든 스태프의업무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영화제에서 초청하는 해외 게스트(감독 및 배우 외 관계자)의 초청을 위해 항공 및 숙박을 예약하고, 영화제 기간 체류하는 게스트들의 일정을 관리하는 초청팀은 이외에도 영화 티켓 교환이 가능한 아이디카드 발권 및 국내 영화 관계자들 초청 업무를 담당한다.

영화제 주요 행사인 개막식, 폐막식 및 리셉션, 부대행사(콘서트, 포럼, 이벤트)를 담당하는 이벤트팀은 각 행사 사회자, 통역자, 출연진 섭외 및 관리, 행사 관련 장비업체(음향, 조명) 섭외 및 공간 관리, 무대 전체 총괄 및 진행을 맡는다. 영화제 기간 중 극장 내 관객 동선을 안내, 영화제 온・오프라인 티켓 발권 업무, 자원활동가 운영 및 관리, 기념품 제작 및 판매 등 관객과 가장 가까이에서 움직이는 운영팀이 있다.

대규모 인원이 함께하는 영화제에 필요한 물품을 협찬받고, 후원사와 협찬사 관련 행사를 진행하는 마케팅팀은 영화제 특성에 맞는 기업 및 단체를 통해 행사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필수 물품을 확보하고, 관객에게 협찬 물품을 배포함으로써 후원사의 이미지와 관련 제품의 홍보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영화제 성격 및 사업 규모에 따라 각각 다른 성격으로 운영되는 후원사업팀은 영화제의 후원회원 가입을 홍보하고, 후원회원을 위한 행사 및 티켓 발권 서비스를 운영한다. 이외에도 각 영화제에서 영화제 주요 행사 말고도 프로젝트 사업을 할 경우, 단기간 스태프가 합류해 독립적으로 업무를 진행하기도 한다.

각기 다른 업무를 맡아 진행하지만, 영화제 준비 시기부터 개최 기간까지 각 팀에서 담당하는 업무가 유기적으로 촘촘히 결합되어 운영된다. 다양한 자리에서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수차례 직면하며 ‘멘붕’을 겪고, 모든 스태프가 긴 시간 함께 준비해서 하나의 영화제가 만들어진다. 폐막식을 끝으로 각 팀에서 진행한 사업 정산, 업무 정리 및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고 대략 3주 안에 단기 스태프들의 업무는 종료된다. 가장 바쁜 시기에 합류해서 쉼 없이 업무를 진행하다보면 때로는 극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단기 계약 기간 및 일의 양에 비해 낮게 책정된 월급 등 불안정한 근무 조건 안에서도 스태프들이 영화제 일을 계속하는 것은 왜일까? 어려운 가운데 결국 개막식은 열리고, 또 그렇게 긴 시간 힘들게 준비한 영화제가 폐막하면 시원한 반면 뭔가 섭섭하고, 내년에는 다른 방식으로 더 잘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내 다음을 기약하게 되기 때문이다.

1996년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영화제는 흥했고, 관객은 열광했다. 이제는 ‘영화제’ 이외에도 관객들이 즐길 만한 거리가 다양한 공간과 분야에서 펼쳐지고 있다. 하나의 영화제를 만들기까지 스태프들 각자 기울인 노력과 수고는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상영작 매진으로 이어질 때 상쇄되는것 같다.

영화제는 영화, 스태프, 관객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한다. 오랜기간 준비한 끝에 개최되는 영화제가 더욱 빛나기 위해서는 각 영화제의 가치와 방향을 이어가는 고유의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하고, 영화제를 찾은 관객을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와 관객’에 집중하는 것이 영화제가 지속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영화제를 완성하는 관객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대하며, 처음 영화제를 찾던 그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2015년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다가올 봄, 푸른 5월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17회를 맞이한다. 당신의 영화제 목록에 포함되길 기대하며 묻고 싶다. 당신의 영화제는 몇 개입니까?



강바다 /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