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일부터 10일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매년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프로그래머들과 프로그램팀 스태프들이 참가하여 출품 공모를 홍보하는 한편, 부산에서 상영되는 새로운 여성영화를 발굴하고 부산을 방문한 다양한 게스트들과의 미팅을 가지며 네트워크를 다지는 등, 다음해 영화제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해 왔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예쁜 출품공모 홍보 엽서를 제작해 부산국제영화제 곳곳에 배포하는 것으로 출장이 시작되었고, 필름마켓으로, 상영관으로, 파티장소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며 수많은 영화와 사람들을 만나는 일정이 진행되었다.
여기까지는 매년 그래왔던 출장의 모습들일 것이다. 20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의 풍경 역시 매년 보아온 그대로 크고 화려하고 북적이는 모습 그대로이다. 20회라고 해서 더 특별한 일이 벌어진다기보다, 늘 그렇듯 부산국제영화제는 그 자체로 그냥 특별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올해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다. 영화제 기간 남포동 영화의 거리에서 “Film Festival Expo Pre”라는 행사가 열린 것. 부산영화협동조합 주최의 이 행사에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10월 2일부터 4일까지 3일간 홍보부스를 운영하게 되었다. 부산 시내 한복판에서, 서울에서 열리는, 그것도 ‘여성’영화제를, 홍보해야 하다니, 그게 가능한 일일까?
영화의 거리에서 우리 부스는 CGV 남포 바로 앞, 부산국제영화제 야외무대 뒤편으로 이어지는 컨테이너들 가운데 비교적 앞쪽에 위치한 빨간 컨테이터였다. 주변에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비롯하여 서울인권영화제와 퀴어영화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올레스마트폰영화제 등의 부스가 들어와 있었는데, 생각보다 참가한 국내 영화제의 수가 많지는 않아 보였다. 그외의 부스들은 행사운영을 위한 안내부스와 기념품샵, 그리고 영화의 거리 자체를 알리는 부산시의 홍보부스와 기타 지역 홍보부스들이 입점해 있었다.
서둘러 부스 내부를 청소하고, 17회 포스터와 역대 포스터, 상영작 포스터를 붙여 컨테이너 안팎을 꾸미고, 가져온 기념품과 책자, DVD 등을 진열하며 부스 운영 준비가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그럴듯한 홍보부스 완성!
이번 홍보부스의 가장 큰 목표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라는 이름을 어떻게든 알리고 돌아오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뉴스레터 가입자도 늘리고, 가능하다면 후원회원도 조금 확보해 볼 것이며,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제작한 DVD도 팔 수 있으면 팔아보자, 뭐 이런 정도? 그리고 SNS 팔로워도 늘려보자며 하루 중 특정한 시간에 SNS로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그래서 부지런히 홍보엽서를 배포하고, 일상사업인 아카이브 보라를 알리는 리플렛과 책자를 시민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 중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이가 있으면 주저없이 이메일로 소식 받아 보시라며 뉴스레터 회원 가입을 유도했고, 소중한 개인정보를 주신 분들께는 작은 선물도 드렸다.
목표는 소박했지만, 그것조차 하나도 달성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컸다. 남포동이 평소에도 워낙 유동인구가 많고 젊은 사람들이 놀러 나오는 곳이라 노출효과가 클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참여형 이벤트를 많이 준비한 터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스를 운영하는 동안 젊은 사람들은 아예 무관심으로 지나치고, 연세가 있으신 남자 어르신들이 이것저것 질문들을 하셨는데, 서울말 쓰는 젊은(젊어보이는?) 여자들이 뭔가를 하고 있으니 그냥 말이나 걸어볼까 하고 오셨다가, 막상 “저희는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나 여성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영화들을 트는, 서울에서 열리는 영화제입니다”라는 말만 나오면 그분들은 지체없이 돌아서 가버리셨다. 그런 상황에서 두근두근 첫 이벤트의 시간이 다가왔다.
SNS로 공지를 올리고, 현장에서 큰소리로 호객을 하며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순간. 드디어 한사람이 다가와 줄을 서기 시작하니 이내 긴 줄이 만들어졌다. 원래 계획했던 18명은 채우지 못했지만 그 절반은 넘은, 나름 뿌듯한 인원이 찾아와 주었고, SNS 인증샷 이벤트도 꽤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이벤트 참여자는 계속 늘어서 준비한 선물을 모두 소진하고 행복하게 부스 운영을 마무리했다.
처음의 걱정과 달리 성황리에 부스 운영을 마치고, SNS 이벤트에 참여하셨던 분들의 반응을 확인하니 3일간의 피로와 긴장이 싹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부산의 한복판에서 여성영화제를 힘껏 외친 기분. 이번 부산에서 만났던 부산시민들 중 단 한분이라도 내년에 열리는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진짜로 와 주신다면 눈물나게 고마울 것 같다.
글: 허경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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