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프로그램팀장, 첫 해외 원정을 떠나다. 대만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끈끈한 자매애로 오랜 관계를 맺고 있는 대만여성영화제의 22번째 영화축제에 다녀왔다. 이번 제22회 대만여성영화제는 2015년 10월 9일부터 18일까지 총 10일간 7개 섹션을 통해 26개국에서 온 83편의 작품이 상영되었다.
제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2009)의 개막작이었던 <반쪽의 삶 Half-Life>으로 친숙한 감독이기도 한 제니퍼 팡(Jennifer PHANG)의 저예산/독립 SF영화 <어드밴테지어스 Advantageous>가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이외에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8편의 작품들이 대만여성영화제의 주요 상영작으로 초청되었다.
대만여성영화제의 특징 중 하나는 공식기자회견을 개막식 날 개최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영화제에 초청된 감독들 및 초청 관계자들 그리고 스폰서들은 기자회견장에서 다 함께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올해 더욱 특별했던 점은 초청된 작품의 배우 중 한 명인 (말레이시아 출신의) 남자 배우가 함께 자리하였다. 대만여성영화제 관계자에게 특별하게 이 배우가 참석한 이유를 물으니 엠마 왓슨의 UN 여성 인권신장 캠페인인 “히포쉬 (HeForShe)” 관련하여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지지를 하는 남성 배우로 선정하여 초대하였다고 설명해주었다.
대만여성영화제의 공식 상영관은 작년과 같이 화산 1914 문화지구(Huashan 1914 Creative Park)에 위치한 영화관 ‘SPOT – 화산극장(SPOT - Huashan Theatre)’으로 총 2개 관에서 초청작들을 상영하였다. 극장이 위치한 문화지구는 극장뿐만 아니라 공연장, 디자인 숍, 소규모 전시공간, 공원 등이 모여 있어 대만 젊은이들을 비롯하여 가족 단위로 자주 찾는 공간이다. 대만여성영화제의 젊고 자유로운 분위기와 굉장히 잘 어울리는 장소여서 참 탐이 난 곳이었다.
개막식이 시작되고, 다양한 초청 인사들이 대만여성영화제의 개막을 축하하며 앞으로 9일 동안의 영화축제를 즐겁고 유쾌하게 시작할 수 있는 행사였다. 제니퍼 팡 감독의 참석 인사와 개막작 소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개막작 <어드밴테지어스 Advantageous>는 동명의 단편영화를 장편 화한 SF영화이다. 디스토피아적인 근 미래를 배경으로 언어 및 예술 등 다방면에 출중한 능력을 갖췄지만, 중년여성이라는 이유로 경제적 활동의 제약을 받는 주인공 그웬은 딸을 사립학교에 계속 다니게끔 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젊고 아름다운 여성과 바꾸려 한다. 저예산으로 SF영화 작업을 해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며 ‘지금’ 우리가 사회에서 겪는 문제들 – 성 불평등, 여성노동, 인종, 신자유주의, 편부모가정, 외모지상주의, 생명공학윤리 – 이야기 함과 동시에 모녀 관계를 정적이고 느린 리듬으로 이야기하면서 감정의 결을 집중해서 포착하는 작품이다.
© <Advantageous>
2015 대만여성영화제의 프로그램은 총 7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있다. 섹션의 주제와 구성 그리고 섹션명 선정에 있어서 늘 흥미롭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올해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7개의 섹션은 '용감한 여성 (Dare & Will)', 'XX 나라 (Fucking Nation)', '빛의 그림자: 중국여성감독들의 워크숍 작품 셀렉션 (Light inside Shadows: A Selection of Chinese Women Director’s Works)', '나이 들지 않는 버자이나 (Vagina Never Old)', '퀴어 경고음 (Queer Beep)', '새물운 물결 (New Currents), '대만 여성감독 경선 (Taiwan Competition)'으로 구성되었다. 상당수의 작품들이 매진을 기록하며 많은 관객의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제니퍼 팡 감독 외에도 태국 트렌스젠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눈에 보이는 침묵 Visible Silence>의 루스 굼니트(Ruth GUMNIT) 감독, 은행 강도로 오랜 수감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삶을 살려는 주인공 반야에 관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다룬 2015 베를린국제영화제 상영작인 <반야 Wanja>의 카롤리나 헬스고르드(Carolina HELLSGÅRD) 감독, 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화제작 중 하나였던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I’m not feminist, but…>의 플로랑스 티소(Florence TISSOT) 감독 등이 참석하여 심도 있는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 <Visible Silence> / <Wanja>
이외에도 각국 여성감독들의 실험적인 단편을 소개한 묶음 상영인 ‘電幻女團實驗篇’에서는 푸티지 영상을 이용한 작품부터 유리 페인팅 기법의 애니메이션 작품, 스톱 모션 등 다양한 실험방식으로 ‘여성’이 겪는 경험들을 보여줬다.
중국 여성감독들의 워크숍 작품 중 하나인 <수 할머니 이야기 Listening to Third Grandmother’s Story>는 아버지의 고모 ‘수’할머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로 감독이 행위 예술가라는 이력을 느낄 수 있는 퍼포먼스 장면들이 다큐멘터리 안에서 흥미롭게 보여진다.
© <Listening to Third Grandmother’s Story> / <Fairy Tale For Average People>
© <Carapace> / <Faint>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언어와 방식으로 여성들의 이야기 혹은 그녀들의 말을 듣는 경험은 언제나 그렇듯 짜릿하다.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이 스스럼없이 영화와 그 속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화산극장’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오랫동안 서로의 곁을 내어주면서 함께 했던 대만여성영화제라는 존재에 대해 고마운 마음과 ‘연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계기가 되었다. 장소는 달라도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말을 공유한다는 것에 대한 기쁨. 이 기운을 이어받아, 어서 신촌에서도 ‘그녀들의 말’들이 넘쳐 흐르는 장(長)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출장이었다.
대만여성영화제 상영작 EPK ▼
글: 김지연 프로그램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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