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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 오희정 PD 인터뷰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12번, 살아가면서도 적어도 400번.

귀찮은 '그날;의 이름은 대자연, 마법, 반상회='생리'

 

모든 여자들이 생리를 하지만 그것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는데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여성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그에대한 연대기를 다룬, '여성의 몸'과 '생리'에 관한 범시대적, 범세계적 탐구다큐인 영화 <피의 연대기>가 지난 달 개봉을 했습니다.

 

 

 

2016년 다큐멘터리 옥랑문화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제작지원을 받아 제 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로 상영한 김보람 감독의 <피의 연대기>의 김보람 감독과 오희정 피디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김보람 감독

 


 

 

Q: 영화를 위해 여러 여성들로부터 생리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특별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무엇입니까?

 

A: 우리 모두 이때까지 질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성장기에 질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고나 할까요. 이 부분은 국내외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학교나 가족들로부터 내 질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특정 상황 시(생리 중, 혹은 섹스 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삽입형 생리용품은 어떻게 사용하고, 자위는 어떻게 하는지등 어떠한 정보도 접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기보단 슬펐습니다. 결국 내 몸의 일부를 알지 못하고, 삽입 섹스를 하는 관계에 진입했을 때 내가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은 나의 신체에 다른 사람의 신체를 먼저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게 슬펐습니다.

 

 

Q: <피의 연대기>가 여성뿐만 아니라 예상 밖으로 남성 관객의 호응을 많이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A: 의외로 남자 관객분들이 질문을 많이 해주시는데요, 제 생각은 아니고 GV 때 질문을 하시는 남성 관객 대다수가 이전까지 모르던 것을 알게 되어 좋았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Q: 영화에 생리에 대한 비교적 많은 정보가 들어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루지 못해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A: 제작 1년 차까지만 해도 영화의 엔딩은 생리하지 않을 권리였습니다. 본질적으로 반영구 피임을 목적으로 하지만 배란을 조절해 생리양이 현격히 줄거나 아예 하지 않는 다양한 시술들에 대해 소개하고, 제가 직접 임플라논 시술을 받아 생리를 하지 않는 첫 번째 달을 맞이하는 것을 엔딩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실제 IUD 시술을 받은 여성 분을 인터뷰 했고,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네덜란드 친구인 샬롯의 경우도 IUD를 받아 12년 째 생리를 하지 않는 자신을 ‘non-period person(생리하지 않는 사람)’으로 소개하기도 헀습니다. 하지만 임플라논 시술을 받기 위해 상담을 받으면서 월경 전 증후군이 꽤 심한 제가 임플라논을 시술 받을 경우 증후군이 더 심각해질 수도 있어 제 경우 피임을 위해서는 피임약을 복용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문득, 90분짜리 영화의 한 챕터로 다루기엔 너무 광범위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임, 생리하지 않을 권리는 그 자체로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어지기에 충분한 이야기였고, 저희 영화에서 10-15분 챕터 안에서 다루고 말 주제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최종적으로 영화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 주제는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에 의학계, 과학계에서 먼저 좀 더 적극적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는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Q: 여성의 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또 한번 찍게 된다면 어떤 소재를 가지고 작업하고 싶은가요?

 

A: 현재 플러스 사이즈 모델 김지양 씨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기획 중에 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 아름다움을 규정하는 것은 나 자신인가 자본 권력인가, 아름다움이 외부로부터 규정될 때 인간 내부에 생기는 문제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게 될 것 같습니다.

 

 

 

 

 

 

 

 

 

 

 

 

 

 

 

 

 

 

   오희정 PD 

 

 

Q: <피의 연대기>를 기획할 때에 가장 중요하게 잡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다시 말해 큰 줄기는 무엇이었나요?

 

A: 생리를 본격적으로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가 없었기 때문에, ‘영문학 입문처럼 생리 입문서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개인적으로는 세 가지 목표가 있었어요. 첫번째로, 비주얼과 형식적으로 새롭고 젊은 감각의 다큐를 선보일 것. 젊은 여성 제작진이 평등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제작 환경을 조성할 것. 마지막으로, 영화를 통해 생리에 대한 담론이 활발해지는 시작점이 되길 바랬어요.

 

 

 

 

 

Q: 영화는 생리에 대한 개인의 경험을 소개하기도, 연대기를 훑어 내리기도, 국내외로 정책적인 변화와 염원을 다루기도 합니다. 이 중에 제작단계에서 가장 안 풀렸던 부분은 어느 부분인가요?

 

A: 제작비 마련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다양한 개인을 만나 그들의 경험을 소개하고, 다각적인 리서치를 진행하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사례들까지 다루기 위해서 필요한 제작비가 상당했어요. 그리고 저희 영화는 소품 준비부터 시작해서, 애니메이션, 모션그래픽 등에 소요되는 제작비 규모도 컸고요. 보람씨와 저 모두 첫 영화였는데 당시에는 신인창작자가 제작지원 받는 게 쉽지 않았어요. 다행히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시작으로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지원해주신 덕분에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었어요. 제작지원을 받지 못해서 후반작업을 위한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어요. 해외에서는 신인창작자에게 특화된 펀드들이 꽤 많고, 이게 우리 첫 영화라고 하면 분위기 자체가 어머, 축하해!” 이런 식인데, 한국에서는 네가 잘 할 수 있겠니?” 이런 분위기라서 자신감을 가지고 밀고 나가는 게 어렵기도 했어요.

 

 

 

Q: 다른 인터뷰에서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열정페이를 강요하지 않는 원칙을 지켰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열악한 독립 다큐 제작환경 속에서 그 원칙을 고수하게 된 이유나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A: 저희가 열정페이를 강요당했던 안 좋은 경험 때문이겠죠(하하). 그런 부당한 일을 겪어서 속상할 때마다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다짐했던 것 같아요. 물론, 알게 모르게 도와주신 분들도 계세요. 그리고 저희 영화에 참여해주신 분들이 워낙 재능이 뛰어나서, 더 드리고 싶었던 아쉬운 마음도 있고요. 그래도 그런 원칙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했던 건 사실이에요. 지속가능한 작업 환경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원칙이라고 생각해요. 재능 있는 분들이 삶이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작업을 포기하는 건 큰 손실이고, 너무 속상한 일 같아요. 생계 걱정을 덜 할 수 있을 때, 좋은 작업을 위해 더 집중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이치인데,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게 결코 쉽지는 않았죠.

 

 

 

 

정리: 함유선 프로그램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