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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보라]

[작품 소개] 성폭력을 소재로 한 여성영화

 

 

내가 말한다. 너는 들어라. 우리가 말한다. 이제는 들어라.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

우리는 여기 있다. 너를 위해 여기 있다.”

 

3 8일 세계여성의 날 기념 페미 퍼레이드 현장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외쳤다.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숨기고 숨죽여 지내야 했던 어둠의 시대가 가고 있다. 어렵사리 목소리를 내는 이, 그 목소리와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이들이 연대하여 더딘 걸음이나마 한 걸음씩 떼어 나아가고 있다. 용기 내어 말하는 것이, 귀 기울여 듣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가치 있고 필요한 시기이다.  

아카이브 보라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주요한 사회 이슈를 다루는 작품들을 다양하게 확보하고 있다. ‘성폭력도 예외일 수 없는데, 이번 포스팅에서는 성폭력이라는 범죄를 두고 세 명의 여성 감독들이 세상에 내어놓은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끔찍하게 정상적인(Awful Normal)> 셀레스타 데이비스, 미국, 2004, 76min, 다큐멘터리

 

이 영화를 연출한 셀레스타와 그녀의 언니인 카렌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매우 가까운 이웃이었던 다른 가족의 가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그녀의 가족들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했지만 피해자인 자매는 25년이 지난 후에도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성추행은 묵인되었고 피하기만 했던 자신들로 인해 추가 피해자가 존재할 것이라는 불안을 떨칠 수 없다. 두 자매는 가해자를 찾아내 그가 그녀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직시하게 만들기로 결심하고 어머니와 함께 범인을 찾아 나선 끝에 그를 대면한다. 가해자가 본인의 범죄에 대해 직접 말하며 인정하고 사과를 하게 만들기까지의 여정은 떨림과 흥분, 그리고 서로에 대한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넘쳐난다. 성추행의 상처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화.

 

 

<미열(Mild Fever)> 박선주, 한국, 2017, 36min, 극영화

 

행복한 부부의 관계에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아내가 9년전에 당한 성폭행 사건의 범인이 검거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함께 찾은 경찰서를 나서면서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운이 감돈다. 얼마간의 물리적 시간이 흐르고 생의 새로운 행복을 찾게 되었다 하더라도 쉽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에 평온하던 일상이 조금씩 흔들린다. 그러나 이내 이 폭풍우와 같은 사건이 서로의 견고한 신뢰와 지지 속에 가벼운 미열처럼 지나가게 된다. 제목과 같이 아픔에서 비롯된 온기이지만 그 따뜻함에 어딘가 모르게 안심이 되는 영화.

 

 

 

<올가미(Traps)> 베라 히틸로바, 체코, 1998, 122min, 극영화

 

 수의사인 렝카는 두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들을 응징하는 방식으로 거세를 선택하게 되는 한 여성에 대한 페미니즘적 블랙코미디. 이 영화에 대해 영산대학교 주유신 교수는 강간을 현대 사회의 도덕과 권력문제를 분석하는 출발점으로 삼은 이 영화에서는 남성과 여성 간에 존재하는 위계화된 관계에서부터 인간이 지닌 공격적인 자기 보존 본능에 이르기 까지 인간을 사회적, 심리적으로 옭아매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때로는 비극적으로, 때로는 희극적으로 매우 명쾌하게 보여준다고 평하고 있다. 가해자 중 하나인 차관의 실체를 폭로하기 위해 나선 피해자를 정신병자로 몰아 포박 당한 채로 앰뷸런스로 이송되는 마지막 장면은, 피해자들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2차 피해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행되고 있는 현재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작성 : 박은민 교육사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