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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식데일리

[PREVIEW] 방랑자 Vagabond

<방랑자>

 

6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창작활동을 멈추지 않은 아녜스 바르다의 세계를 단번에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바르다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재능과 역량을 지닌 감독이었는지 알고자 한다면 <방랑자> 단 한 편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바르다는 세계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미스터리한 여성 방랑자 캐릭터 ‘모나’를 창조해냈고, 열일곱의 상드린 보네르는, 어느 경로로도 그 내면을 알아낼 길 없지만 동시에 세상 누구나이기도 한 모나의 삶을 강인하게 살아냈다. 단지 얼어붙은 길 위를 걸음으로써, 스산한 겨울의 풍경 속을 육체의 무게로 버팀으로써, 보네르는 모나의 길을 살아냈다.

 

모나. 무엇에도 굴복하지 않을 눈빛으로 세상을 노려보고, 처절한 몸짓으로 세상에 저항하며, 누구보다 자유롭게 세상 속을 거닐다 죽어간 소녀. <방랑자>는 세상 모든 규율을 등진 채 홀로 걷고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이 소녀, 모나의 여정을 엄격한 방식으로 좇는다. 영화는 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움직이는 트래킹 숏 안에서, 견고하게 프레이밍된 모든 장면 안에서 몸에 지니고 있는 옷가지와 사물들이 헤지고 닳아빠지도록 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모나의 여정을 끈질기게 따라가지만, 결코 모나의 내면에 대해서만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나가 죽기 전까지 마주친 사람들의 진술을 통해 영화는 그들의 시선과 욕망이 투영된 모나의 면면들을 붙여나가지만, 끝내 그녀의 초상은 하나의 얼굴로 수렴되지 않는다. 다만 모나의 얼굴엔 수많은 우리의 얼굴이 있다. 이 영화가 아프다면 모나의 단일한 육체성이 스크린을 너머 우리를 진격해 오기 때문일 것이며, 그녀의 얼굴에 우리의 초상 또한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방랑자 Vagabond
추모전: 바르다 by 해머|아녜스 바르다|프랑스|1985|105분|15세 이상|DCP|컬러|픽션

603 2019-09-04 | 11:00 - 12:45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5관

 

글  홍은미(리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