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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식데일리

[INTERVIEW] <박강아름 결혼하다> 박강아름 감독·김문경 PD

"홈비디오, 무시 마라"

박강아름(왼쪽) 김문경 ⓒ이영진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지난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옥랑문화상(다큐멘터리 제작지원 프로그램) 선정작이며, 올해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하는 작품이다. 전작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에서 외모지상주의와 전형화된 여성 이미지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던 감독은, 결혼과 가족이라는 시스템 내에서 작용하는 성 역할 문제를 파고드는 두 번째 다큐멘터리로 돌아왔다. 박강아름은 영화 안에서 여성, 외국인, 학생, 감독, 가장, 아내, 엄마 등 여러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다. 이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한다는 압박감과 곤경이 드러나기에, 영화는 한 개인 또는 특정 가족의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다. 한국과 프랑스, 육아와 작업, 가족과 동료 사이에서 동분서주 하며 영화를 완성한 박강아름 감독과 든든하게 곁을 지키며 단단한 팀워크를 만들어낸 김문경 프로듀서로부터 <박강아름 결혼하다>를 완성하기까지 어떤 난관을 함께 통과했는지를 들었다. 

 

 

두 사람은 연출자와 프로듀서이자, 공동체상영과 미디어교육 등을 진행해온 ‘창작집단3355’의 멤버이기도 하다. 어떻게 처음 만났고 공동작업을 결정하게 되었나.

김문경  나, 아름, 촬영감독인 허성,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성만까지 우리 넷은 사적으로도 친하다. 일종의 신념 공동체로써 여러 가지 작업을 함께 해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친구와 건강 아닌가. 주류 시스템에 속해 있지도 않고 자본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 돕는 것이 당연했다. 진보정당 당원으로 처음 만났고, 알고 보니 다들 ‘마이 웨이’형이어서 더 가까워졌다. 그해 우리에게는 용산 참사가 큰 충격이었다. 이전까지 서울은 글 쓰고 영화 만들고 싶어서 올라온 꿈의 도시였다. 도심 한복판에서 사람이 불에 타죽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더라. 학교 다닐 때는 시위 한번 해본 적 없는데, 어쩌다 정당에 가입하고 당원들이 모이는 자리에 나갔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슨 이야기인지 정확히 알아듣지도 못해서 어색하게 눈만 굴리는데,  나랑 비슷한 애들이 보였다. (웃음)

 

박강아름  전작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2015)의 총 제작기간이 8년 정도 된다. 이유는 복합적인데, 일단 제작비가 없었고 꾸준히 같이 할 동료도 없었다. 제일 답답한 것 중 하나는 피드백을 받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5년 동안 국내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제작지원에 출품했다. 떨어질 때마다 이유가 궁금했고, 기획안을 업데이트 한 후에 당시 심사위원에게 메일을 보낸 적도 있다. 개인 작업자로서 그만큼 피드백을 들을 만한 자리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김문경 프로듀서를 만났다. 내가 만드는 다큐멘터리의 주제가 흥미롭고, 늘 영화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 나를 보는 것도 재밌었다더라. (웃음) 문경이 합류하면서 영화에 힘이 붙고 서사가 완성되기 시작했다.

 

<박강아름 결혼하다>

영화 오프닝에 프랑스 유학을 결정한 이유를 짧게 설명한다. 다소 막연한 꿈처럼 느껴지는 동시에, 현실적인 고민을 떠안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강아름  긴 시간 동안 영화를 만들면서 국내 영화계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이 생겼다. 한국은 사적 다큐멘터리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지 않나. 여성 감독의 첫 작품으로 국한시키거나 여자라서 사적 다큐멘터리를 편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여기서 인정받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언젠가부터 프랑스 이주유학을 꿈꿨다. 6-70년대 비디오 페미니즘의 무대로서 사적 다큐멘터리의 모태가 되는 형식적 실험이 자유롭게 이뤄졌던, 바로 그 프랑스로 가리라! (웃음) 한편으로는 이십대 초반에 짧게 다녀온 교환학생 경험을 통해, 서울보다 체류비가 적게 든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학자금 대출 상환, 하숙비, 각종 생활비까지 합치면 아무리 계산해도 한 달에 150만 원은 필요했다. 그럼 풀타임 직장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고, 자연스레 작업은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악순환이 반복되니까 어느 순간 남들 잘 되는 모습이 배 아프더라. (웃음) 누가 이런 작업을 하고 어디서 공개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축하하면서도 짜증이 나는 거다. 그런 내 모습이 싫었다. 이대로 두면 콤플렉스가 될 텐데, 평생 그렇게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영화에 나온 대로 정말 3천만 원을 모았다. 어리석게도 10년 전 교환학생 시절 물가로 계산한 것이 함정이다. (웃음) 남편인 성만에게는 3-4년이면 될 거라고 장담하며 꼬드겼다. 그렇게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 모두를 수렁에 빠트리는 고생문을 열었다.

 

 

다큐멘터리는 해외 이주를 결심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여성의 몸을 탐구하다가, 이후 결혼제도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국면을 전환한다. 애초에 명확한 기획안을 갖고 출발하기 어려웠을 텐데, 어느 시점부터 촬영을 시작했고 작업 방향을 잡아나갔는지 궁금하다.

박강아름  촬영은 2016년 5월부터 시작해서 3년 정도 걸렸다. 프랑스에 온지 석 달쯤 되었을 때부터 성만이 가끔씩 우울감과 불안을 호소했다. 성만은 한국에서 보조요리사로 한참 의욕을 갖고 일하던 시기였는데, 나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채 프랑스로 온 상황이었다. 당시 뉴스에 공유경제라는 개념이 자주 소개되었고, 거기서 힌트를 얻어 거실에 식당을 여는 ‘외길식당’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카메라는 그즈음부터 들었다. 처음 기획은 지금과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한 동양인 남자가 요리와 식사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는 프로젝트로 출발했던 것이지, 나의 가부장성이나 가족 내 딜레마를 발견하겠다고 시작한 영화는 아니었다. 촬영을 지속하고 그 영상을 확인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 말과 행동이 눈에 들어오더라.

 

김문경  아름이 기획안을 처음 보냈을 때, “이건 홈비디오야”라고 딱 잘라 말했다. 아름으로서는 전작을 폄하하는 평가에 압박을 느끼던 시기였다. 게다가 파트너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서 뭐랄까, 남편 기를 살려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너무 느껴졌다. 막상 촬영 영상은 “자기야, 이렇게 해봐. 아니, 저렇게 해봐.”하면서 싸우는 내용인데 말이다. (웃음) 서로 대화를 나누며 영화의 틀을 잡아나가는 동시에, 인천다큐멘터리포트와 전주시네마펀드 등 여러 피칭을 거치면서 이야기를 발전시켰다. 거기서 나온 수많은 질문을 통해 영화가 정확한 목표와 방향을 지닌 작품으로 나아갈 수 있던 거다. 당장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마주할 때면, 아름은 울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런 점 때문에 감독을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함께 갈 사람이라고 확신을 주는 순간이었다. 자기 욕망과 혼란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데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너희는 아직 단단하지 못하다”라고 평했던 분들이 작품을 꼭 보시면 좋겠다. 우리는 정말 단단하지 않은, 젤리 같은 상태로 진창을 구르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웃음)

 

<박강아름 결혼하다>

박강아름 감독에게 박강아름은 흥미로운 대상이자 매력적인 작업 재료이다. 다만 이번 작품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남편 성만과 딸 보리가 등장하는 집을 주된 배경으로 삼는다. 생활공간이 곧 촬영현장인 상황에서 어려움이 많았으리라 짐작한다.

박강아름  영화, 학교생활, 육아 등 모든 것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니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웃음)

 

김문경  외길식당 2차 프로젝트 오픈 당시, 프랑스에 한 달 정도 머무르면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박강아름은 일생이 좌충우돌인 사람이고, 그러면서도 일관성의 법칙마냥 그럭저럭 감당하며 굴러간다. 나는 개인 공간이 없으면 못 견디는데, 아름은 ‘엉망진창’이 된 모든 현장을 무대라고 여기는 듯했다. 언제나 더 힘들고 비합리적인 길을 선택하면서도, 자기 방식대로 해낸다. 적어도 자신이 한 선택에 불평하지 않고, 선택하지 않은 걸 탐내지도 않는다. 뒤뚱뒤뚱 허둥지둥 걷는 아름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개인적으로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가 떠오르기도 한다. 여성에게 필요한 모델 아닐까. 누군가는 미련하다거나 이상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선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려고 하는 모습이 소중하다.

 

 

한국과 프랑스는 거리도 멀거니와 시차 또한 8시간으로 크다. 소통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프로듀서 입장에서 이번 프로듀싱의 핵심은 뭐라고 생각했나.

김문경  아름은 뭐였던 것 같나.

 

박강아름  기다림? 내가 계속 기다리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일단 작업의 첫 단추는 보는 일 아닌가. 내가 찍은 걸 봐야 뭔가를 시작할 텐데, 이번에는 그게 너무 힘들더라. 방어적으로 미루며 얼마간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냈다. 내가 문을 열 때까지 문경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김문경  기다리는 일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원래 결정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만, 일단 시작하면 확신을 갖는 스타일이다. 박강아름이라는 인간에게도 감독에게도 믿음이 있었다. 다만 기다리던 시간에는 내 생각을 전달했다. “너는 회피하는 중이야. 그래도 괜찮아. 기다릴게. 나라도 당연히 힘들 것 같아. 그런 작업은 너만 할 수 있어.”라고 말로 표현하면 아름도 반응을 보여주었다. 아름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름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거든.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누가 나를 뭐라고 평가하는지 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영화가 공개된 이후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듣든, 제 손을 떠난 시점에서는 “아, 모르겠다”며 넘어가는 거다. 정말 배우가 됐어야 했는데. (웃음)

 

“카메라 켜면 이렇게 말이 달라지는데, 앞으로 어떻게 진실을 담겠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농담 섞어 남편을 채근하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카메라를 켠다는 행위 자체가 인물 사이에 긴장감을 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언제 또는 무엇을 촬영하고 촬영하지 않을지, 연출자로서 정해둔 원칙이 있었나.

박강아름  물론 최대한 찍고 싶다는 욕심은 있었지만, 내 욕망만으로는 되지 않는 부분임을 인정했다. 나는 내 영화 작업을 하는 중이지만, 성만에게는 일상에 카메라가 들어온 거다. 거의 모든 순간을 불편해 했고, 그가 동의하지 않을 때는 카메라를 꺼야 했다.

 

김문경  성만의 참여를 고민하고 짚어주는 것이 프로듀서의 역할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이건 우리가 함께하는 작업이고, 성만은 출연자이자 메인 스태프였다. 그 부분을 명시한 다음부터 성만은 본인 작업이자 공동 프로젝트로서 영화를 이해했고, 더욱 적극적으로 작업에 참여했다. 한편 “네가 싫으면 절대 찍을 수 없어. 찍은 다음에도 뺄 수 있어.”라는 이야기도 전했다. 성만이 싫어하는 장면을 뺀다고 영화가 망할 리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한다고 망할 영화라면 애초에 만들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박강아름  그런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얼마나 유의미한 일인지, 각각 어떤 것을 위해 작업하는지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각자 고마운 사람을 말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으니,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마무리하자. (웃음)

박강아름  나는 내 안의 나 자신이 너무 큰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런 작업을 계속하겠지만, 일기가 아닌 이상 이것만으로는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 결국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고 많은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김문경 프로듀서는 용기를 내서 날 도와준 동료이자, 내가 스스로 용기를 갖도록 도와준 친구다. 고백하면 전작을 마치고 나서, 이제 두 번 다시는 사적 다큐멘터리를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게 무척 콤플렉스였거든. 학예회 하느냐며 무시하고 비웃었던 심사위원들, 그 중장년 남성으로 구성된 집단에 증명하고 싶었다. 더 정치적이고 더 거시적인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면서 아득바득 했는데, 그때 김 피디가 말해줬다. “아니야, 네 작품 되게 훌륭했고 절대 쉬운 일 아니었어. 너 같은 감독이 필요해. 콤플렉스라고 생각하지 마.” 아무도 나한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을 때, 유일하게 해준 사람이다. 김 피디가 없었다면 이번 작품은 어려웠을 거다.

 

김문경  아니, 그래도 했을 거다. (웃음) 나한테 아름은 그냥 존재 자체로 고마운 사람이다. 처음 만났을 때 이 친구가 교복을 입고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퍼포먼스 중이었는데, 당시엔 보자마자 머릿속에 ‘아, 당장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더라. (웃음) 정말 ‘미친’ 사람인데, 아름의 그 미침을 좋아하고 아낀다. 본래 사랑스러움은 지긋지긋하고, 사고치고, 실용성 없는 데서 나오지 않나. 무용할수록 무해하고 귀엽다.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리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