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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화제/10회(2008) 영화제

판타스틱 여성영화 서문


당연하다고 말해지는 것들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소리 내고 지루한 질서를 뒤집어버리는 힘, 그 힘은 완전히 다른 것을 그려볼 수 있는 상상력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그 상상이 존재하는 곳이 판타지 공간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이렇게 현 사회를 위반하고 ‘그 위반으로의 유혹’을 가능하게 하는 여성 판타지 공간에 말을 걸고 21세기 여성 상상력을 점검한다. 이 부문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자본을 만난 과학이 권력화 되고 있는 기술과학의 시대, 남성적인 과학 영역에 도발하는 여성 판타지다. 기술과학을 확장시키는 것은 상상력이지만 상상력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술과학이라는 양자의 관계에 대한 이해는, 21세기를 설명하는 화두인 기술과학에 대한 고민을 ‘상상력’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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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진부한 이분법적 범주화를 극복하고 환상과 미지에 담합한 과학과 이성을 묘사하는 <궁녀>는 과거를 배경으로 과학에 대한 여성의 새로운 이해를 보여준다. 반면 <죽음을 부르는 파일, 워치 미>는 현대 사이버 사회를 비춘다. 이 작품에서 현실 공간에서 남성들의 시각적, 육체적 쾌락을 위해 ‘몸’으로 희생당한 여성은 사이버 공간으로 돌아와 복수를 시작한다. 여기서 여성의 몸은 현실 공간과 사이버 공간을 연결하는 접점이 된다. 심장 이식을 통해 남성의 폭력을 공감하는 두 여성의 연대를 보여주는 <메모리 이펙트> 역시 여성의 몸을 통해 과학에 접근한다. 더불어 여성과 과학의 관계에 대한 미래적 상상을 펼치는 <테크놀러스트>가 함께 소개된다. 자신의 DNA로 복제인간을 만드는데 성공한 유전공학자 로제타에게 과학은 폭력과 억압이 뒤따르는 권력과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의 장이 되고, 민족/국가 등의 거대담론을 벗어난 개인적인 문제가 된다.

자아 경계를 초월하는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판타지 공간이 근대 의학의 침입으로 위기를 맞이하는 <블라인드>와 자기 마음대로 아이를 만들어 내려는 <슈프로슬링>의 상상력 역시 기술과학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은 어린 소녀들의 처절한 사랑과 갈등을 다룬 <블러드 시스터즈>, 심리적 불안감이 불행을 부르는 <도플갱어>, 그리고 지적 판타지 <워터>와 함께 여성들의 도발적인 상상력을 드러내는 아름답고 섬뜩한 여성 환상동화로 즐겨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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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문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모두 공포, SF, 판타지 등 대중적 장르로서의 판타지 영화다. 판타지는 사회적으로 억압되고 허용 받지 못하는 욕망을 눈에 보이게 드러내고 ‘존재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 사회가 정해 놓은 조건들을 문제시한다. 그러나 그런 욕망이 가시화되고 구체화되는 순간 사회는 그 욕망을 포섭 가능한 것으로 전치시켜 안전하게 가두어 버린다. ‘판타스틱 여성영화: 위반과 유혹의 공간’은 판타지의 전복적인 기능을 더욱 드러내고 봉합의 기능을 여성 전복의 힘으로 바꾸어 내기를 욕망한다. 가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사회에서 봉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화법을 통해 그 환상성을 여성들이 활용 가능한 운동의 도구로 구체화시키려는 것이다. 그것이 대중적으로 소통되는 장르 영화에 주목하는 이유이며, 이를 통해 위반으로의 아찔한 유혹이 가능하기를 기대해 본다.


프로그래머 손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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