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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아멜리 헤이스티 강연록 "아이다 루피노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다"

아멜리 헤이스티 강연록

 

아이다 루피노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다

Iba Lupino and Historical Legibility

 

지난 6 1일 오후 3, 이화여대 ECC극장에서는 제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회고전의 주인공인 아이다 루피노에 대한 강연 아이다 루피노,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다’가 열렸다. 뛰어난 장르영화 감독으로, 그리고 일찍이 페미니스트적인 시각을 구현한 여성영화의 선구자로서 아이다 루피노를 재조명하기 위한 이날 강연에는 아이다 루피노 연구자인 미국 애머스트 대학의 아멜리 헤이스티 교수가 나섰다. 강의 시작에 앞서 이번 아이다 루피노 회고전을 기획한 조혜영 프로그래머는 아이다 루피노는 여성작가로서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산업 내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측면에서 연구가 덜 되었던 감독이다특히 장르영화 내에서 스튜디오의 요구와 자신의 관점을 일치시키거나 달리하고, 때로는 여성적 관점에서 고집하면서 어떻게 장르영화를 만들어냈는가 라는 측면에서 회고될 필요성이 있다고 이번 회고전을 기획한 의도를 밝혔다. 그날 아멜리 헤이스티의 강연을 지면으로 옮겨 공개한다. 강연자의 요청에 의해 원문은 공개하지 않으며, 본 강연록은 당일 통역자의 통역 부분을 녹취한 버전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아멜리 헤이스티: 여러분을 뵙게 되어 기쁩니다. 아이다 루피노의 작품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알려지게 되는 자리인데 매우 감명 깊습니다. 미국에서 극영화를 만드는 감독 중에서 여성으로는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를 통틀어서 여성감독은 딱 두 명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조명되는 것에 관해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회고전을 기획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참석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아이다 루피노는 영화사에서 꽤나 문제의 인물인 것 같습니다. 사실 영화사 연구에서 몇 개의 경우를 제외하고 루피노는 완전히 모습을 감췄는데요. 대부분의 영화사학자들은 루피노가 누군지는 알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고, 단 두 명뿐인 여성감독들은 많은 부분에서 외면을 당했습니다. 제가 쓴 루피노에 대한 책 『중혼』은 루피노에 대해 2번째로 쓰여진 책입니다. 루피노에 대해 쓴 연구론은 없습니다.

루피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문제점이자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지금까지 그녀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던 것이) 그녀의 업적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다양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산업을 오가면서 활동했던 루피노라는 인물을 특정하는 게 어렵다는 거죠. 그래서 오늘 강연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특정한 분류에 넣어서 루피노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자는 제안이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루피노를 독해할 때 발생하는 난독성과 가독성을 파악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이 자리에서 루피노는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그의 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 왜 우리가 루피노를 조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작가론적 관점, 역사적 관점 등을 통해 루피노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먼저 루피노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국에서 태어난 아이다 루피노는 가족적 전통[그녀의 가족은 런던의 유명한 쇼비즈니스 그룹으로 활동했으며 그녀의 부모는 레뷔 무대에 서는 연예인이자 배우였다 편집자 주]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영국에서 여러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하다가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멜로물에서 순진한 처녀 역을 많이 맡았습니다. 그러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껴 자신의 외모를 바꾸는 등의 노력을 거쳐 1940년에 워너브라더스와 계약을 하고 13편의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필름누아르와 멜로영화에서 주로 주연을 맡게 되었죠.

그녀의 연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루피노는 독립심이 강한 여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배역이면 거부하였고 1년에 네 번은 다른 영화사와도 활동할 수 있게 해달라고 영화사에 요구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활동정지를 먹게 되었지만 그 이후 워너브라더스의 재계약 제의를 거절할 정도로 자신의 생각이 확고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루피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만큼은 자신 스스로 여러 가지 중대한 변화를 이끌게 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콜리어 영과 결혼을 하고 함께 독립영화사 필름메이커스(The Filmmakers)’를 차리게 된 일입니다. 루피노는 원래 연출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해 왔었지만 미혼모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이런 영화는 당시의 대형 스튜디오 시스템으로는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만들기 위해 독립영화사를 차린 것입니다.

하지만 필름메이커스는 영화 상영을 위해 극장을 잡는 것에서부터 어려움에 봉착했습니다. 왜냐하면 극장들이 필름메이커스가 만드는 영화의 소재, 이를테면 소아마비라는 소재 같은 것들을 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필름메이커스는 재정난에 수시로 빠지게 됐고 루피노는 이를 혼자 헤쳐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다 많은 통제권을 다른 곳에 넘기게 돼버렸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게 된 루피노는 이혼도 하게 되죠. 하지만 콜리어 영과 비즈니스적으로는 계속해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루피노는 필름메이커스에서 네 편의 영화를 더 연출하게 되는데 가장 유명한 작품인 <중혼>에서는 전남편인 콜리어 영의 새 부인과 함께 출연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이유가 영화사 문을 닫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런 식의 어려움은 영화사가 초창기라서 겪었을 것이고, 결국은 영화 커리어가 적다는 것이 영화사가 문을 닫게 된 결정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배급을 자체적으로 하려고 노력하던 중 결국 회사가 망하게 되었죠. 필름메이커스에서 그녀가 만든 영화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사회적 이슈를 다루었고 가족관계, 합법적인 성과 범죄의 관계를 다루고 있었으며, 보다 이해심 많은 인간적인 법 제도를 호소하는 메시지가 담겨있었습니다. <중혼>의 마지막 장면에서 법정장면이 나오는데요, 루피노가 보다 동정심이 많은 법제도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전형적인 장면입니다.

, 그러면 이제 씨네필이라는 키워드, 그리고 작가론을 통해 루피노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범주를 만들어보겠습니다. ‘씨네필이라는 것은 영화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죠. 씨네필 운동으로부터 생겨나게 된 작가정책은 작가 감독들과 비평가들의 애정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작가정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자 원동력은 이 정책이 감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작가정책을 채택한 많은 영화 비평가들이 글을 쓸 때 영화를 만든 감독에 많은 애정을 투영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할리우드 감독인 니콜라스 레이를 평가할 때 글 쓰는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광분을 해서 니콜라스 레이라는 보물을 발견했다라고 말하는 식으로요.



이런 씨네필적인 글쓰기가 그 당시에 등장하게 되었는데 모두 남성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었습니다. 평론가, 감독들 모두 남성이었죠. 이들의 씨네필적인 글쓰기에는 접근법에 있어 하나의 특이성이 있었습니다. 영화 속 어떤 한 이미지에 몰두하고, 그 이미지에 연연하고, 그것을 감독의 특이성과 개성과 연관시키려는 것이죠. 흥미롭게도 일종의 예술적으로서의 권위를 작가감독에게 부여하는 과정에 감정이 실렸기 때문에 이 정서라는 영역에서 남자들이 대거 들어가게 된 거죠. 근데 애초에 감정 자체에는 젠더라는 성향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제가 루피노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항상 했던 질문이 당대의 영화평론가들이 루피노의 작품을 주의깊게 봤으면 어떤 반응이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루피노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루피노 역시 이 영화평론가들에게 니콜라스 레이의 여자 버전으로도 평가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론이란 것은 감독의 작품을 보면서 반복적인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인데 그것이 축적되면 작가감독이구나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작가론이라는 것은 후험적이고 귀납적인 그런 지식에 도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있는 증거를 가지고 추적하는 것이라는 거죠. 작가론의 기능이란 작품을 보기도 전에 감독의 네임 밸류만 보고 가치를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루피노에게 작가감독이라는 범주를 부여한다면 어떤 의미일 것인가, 그리고 루피노에게 페미니스트 적인 작가라는 호칭을 부여한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할까요? 그랬을 때 아이다 루피노가 조금은 가독성이 부여되는 감독이 될까요? 너그러움이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감독의 작품을 볼 수 있게 될까요?

루피노의 작품에 대해서 쓰여진 글이 워낙 없다 보니까 제가 책을 쓰면서 영화사, 그리고 페미니즘이라는 틀 속에서 루피노라는 작가를 읽을 수 있는지 시험을 해보고자 했습니다. 잠시 여러분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자면 한 권당 영화 한편에 대한 평론을 쓴 책 시리즈[아멜리 헤이스티의 책 『중혼』을 비롯해 책 한 권을 영화 한 편에 대한 분석 글로 채우는 BFI Film Classics 시리즈를 말함 편집자 주]를 처음 봤을 때 전 사랑에 빠졌습니다. 영화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여졌고, 영화 하나를 놓고 그 하나를 위해 오마주처럼 쓰여진 책들이기 때문에 굉장히 좋아했고 나도 이런 책을 쓰면 어떨까 등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시리즈를 집필하게 되자 과연 이 책을 통해 나의 애정을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염려되더군요. 결국 저는 루피노에 대한 존경과 사랑 때문이 아니라, 씨네페미니즘이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영화사, 페미니스트 영화 만들기의 관점에서 이 책 『중혼』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습니다. 이는 그 영화에 대한 사랑 이상인 것이죠. 영화를 이해하려고 하는 사랑이기도 합니다. 특히 페미니즘 영화사에 내가 헌신하겠다는 것의 표현이죠.

그럼 이제 영화사라는 측면에서 그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영화사에 그녀의 존재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고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루피노에 대해 애정을 품는다는 것은 이 많은 연결고리에 비롯되는 것입니다. 루피노의 작품은 마치 분실물 같은 것이죠. 필름은 유한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세월이 지나면서 분실되기 때문에 디지털화해서 보존해야 하지만, 보존하지 못하고 사라진 영화들도 많습니다. <아웃레이지>가 손실된 것은 역사적인 손실일 뿐 아니라 우리의 기억의 손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필름 자체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소유 행위에 노출되는데, 이러한 소유행위가 필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죠. 유실된 것을 복원하는 행위는 유실되는 것을 찾아내는 행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유실된 것을 역사 속에서 다시 복원해서 역사적인 맥락 속에 위치시키는 것. 그것이 유실된 것을 복원하는 행위가 됩니다.

제가 루피노 작품에 나오는 모든 영화 이미지를 사랑한다고 분명히 말은 못할 것 같지만 그 영화가 구현해내는 역사를 사랑하는 것이라고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자체를 사랑하는 씨네필로서의 행위가 아니라 영화사를 사랑하는 영화사 광으로서의 행위입니다. 저로서는 이것이 정의를 외치는 행위가 되는 것이죠.

아이다 루피노는 텔레비전과 영화 산업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해왔습니다. 배우와 연출을 겸업하면서 또 TV와 영화 산업에서의 연출을 겸임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거의 40년 동안 홀로 활동을 하였죠. 이렇게 활동한 것이 여성으로서는 아이다 루피노가 유일하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루피노를 외면한다는 것은 남성 학자들이 주로 범하는 실수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이런 근시안적인 실수를 범하면 안 된다고 여겨지고, 루피노는 자신이 받아야 할 주목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루피노가 그 동안 주목 받지 못한 데에는 자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발언했던 것이나 그 외에 여러 가지 규정짓기 힘든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루피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면서도 우리의 분석이 처하게 되는 어떤 모호성에 있어서는 그것을 무리하게 메꿔 가려는 것보다는 여러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에 대해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아시아에서 최초로 회고전을 기획하고 상영하고 선보인 것에 대해서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강연을 마칠까 합니다.

 

 

관객질문

 

관객: 아이다 루피노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이 분이 연출을 했던 드라마 시리즈가 한국에서 60년대에 방영되어 굉장히 인기였었습니다. <트와일라잇 존>(The Twilight Zone, 1964)이 바로 그것인데요. 우리나라도 비슷하게 어떤 사람의 역사적 가치를 잘 몰라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점이 너무 아프고 강연을 들으면서 너무 슬프고 좋았습니다.

아멜리 헤이스티: 고맙습니다.

 

관객: 아이다 루피노처럼 공공연하게 페미니스트임을 부정하고 여성의 이슈를 다루지만 긍정적이거나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는 여자감독에 대해서 성별이 여자라고 해서 우리가 줄 수 있는 어떤 점수 이외에 연구자 혹은 씨네페미니스트로서 이러한 여성영화인을 대할 때 곤란한 것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연구를 진행해 나가시는지 궁금합니다. 긍정성과 부정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멜리 헤이스티: 방금 말씀하신 것이 루피노에 대한 핵심일 것 같은데요. 그녀가 역사적으로 조명 받지 못한 주된 이유가 그녀 스스로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규정하지 않은 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루피노에 대한 자료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당대는 루피노가 자신을 쉽사리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하지 못하는 시대 상황이었고 어떻게 보면 그것이 전략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시대적 제약을 인정을 하고 나면 우리가 그녀에 대해 페미니스트적인 독해를 꺼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는 대부분 다 여성이었고, 루피노 역시 여성으로서 당당히 일했던 감독입니다. 이 이유만으로 루피노를 조명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왜 이렇게 훌륭한 감독을 미국이 우리에게 감춰 두었는지. 남성평론가들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루피노의 작품을 보면서 정말 잘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볼 수 없었던 것에 대해서 어떤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제가 본 세 작품에서 아이다 루피노의 연출이 갖는 시각적인 어떤 면, 특히 주제와 관련하여 아주 뛰어난 면을 발견했습니다. 꽃의 이미지 같은 것들이 아주 인상적이었고, 매우 의도적으로 연출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른 영화와 비슷한데 왜 루피노의 영화만 주목이 안되었는지 의문이 들고한마디로 루피노에 대해서 놀란 점은 남성적인 시각을 깬다는 것입니다. 남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장르를 파괴하는 연출력에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의 해석들이 미국에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하고요. <거칠게, 빠르게, 아름답게> 영화 포스터를 보니 남성적인 것들이 많이 있는 것 같은데 이런 것들이 남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보게 하려는 것인지 교수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아멜리 헤이스티: 영화평론가들로부터 루피노가 외면 받은 것은 배급구조로 보나 보존상태로 보나 퀄리티의 문제를 많이 제기했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봅니다. 여성이 만들었다고 하면 기본적으로 더욱더 품질을 따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포스터에 대한 내용은 관객을 끌어들이려고 그렇게 만든 것 같아요. 여기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포스터는 감독과의 의도와는 다르게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