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애처럼 뛰어봐.’
여러분은 이런 요청에 어떻게 응할 것인가? 가능한 전력을 다해 뛸 것인가, 아니면 소심하게 몸을 사릴 것인가? 도브의 공익광고 시리즈인 이 비디오는 ‘여자애처럼’이라고 하는 언어가 가진 여러 함의와 가치들을 보여준다. 실험자들의 반응에 따르면 ‘여자애처럼’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느리고, 소심하고, 겁 많고, 행동반경이 좁고, 운동능력이 없고, 이기려는 경쟁심도 없는’이라는 함의가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남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비디오의 여성 실험자들조차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최대한 적게 움직이고, 느리게 뛰며, 자신은 하지 않을 만한 과장된 몸짓을 보여준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여자들조차 ‘여자처럼’이라는 것을 비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인 자신에게서 사회적 통념 속의 ‘여자’를 분리해낸다.
하지만 실제 여자애들은 ‘여자애처럼 뛰어봐’라고 했을 때 최선을 다해 자기의 능력을 보여준다. 실제 여자애들은 다른 실험자들이 보여준 방식대로 뛰지 않는다. 이 비디오는 우리가 ‘여자애처럼’이라고 하는 말 속에 어떤 의미를 담아 사용하고 있는지, 얼마나 그것이 과장되고 현실과 다른지, 그리고 심지어 그 말이 실제 여자들이 자신의 최선을 다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5.27-6.3)에는 이처럼 고정된 여성성을 깨는 영화들이 다수 준비되어 있다
<검을 쥔 공주>(세실리아 토르콰토, 2008, 스웨덴)
유치원에서 공주역할을 맡았지만 남자아이들처럼 검을 갖고 놀고 싶은 여자 아이의 상황을 유머러스한 판타지로 그려낸 단편.
Frog - Trailer from C. Torquato on Vimeo.
<광란의 롤러스케이트>(마야 갈루스, 저스틴 핌롯, 2014, 캐나다)
여성 롤러 더비를 엄청난 속도감과 퀴어 하위문화의 흥겨움으로 담아낸 스포츠 다큐멘터리. 스포츠 세계의 여성과 여성성을 보는 방식을 바꿔 줄 광란의 시간을 제공할 것이다. 드류 베리모어가 감독·출연하고 엘렌 페이지가 주연을 맡았던 <위핏>(2008)을 재밌게 본 관객이라면 놓쳐선 안 될 롤러 더비의 간접체험.
<나의 사랑스러운 개 같은 인생> (도리스 되리, 2014, 독일)
멕시코 민속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인 마리아치는 일반적으로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나의 사랑스러운 개 같은 인생>은 여성들만으로 이루어진 마리아치를 꾸려가는 강한 여성들을 보여준다. 도리스 되리 감독 특유의 따듯하고 낙관적인 세계관은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사랑, 음악, 삶의 지혜 등이 어우러져 요동치는 감동적인 영화.
<말 타는 소녀들>(리사 아샨, 2011, 스웨덴)
마상묘기팀의 에이스인 두 소녀의 우정, 사랑, 경쟁을 통해 소녀들 간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그린 영화. 스포츠와 경쟁, 신체의 컨트롤, 마음과 몸의 관계, 여성들 간의 사랑을 예리하게 포착한 수작.
<마이 스키니 시스터>(산나 렌켄, 2015, 스웨덴)
스웨덴 판 “미스 리틀 선샤인.” 김연아는 예쁘기만 한 게 아니다. 김연아는 누구보다 뛰어난 운동능력을 갖추고 무한 경쟁 속의 정신적 압박을 다루기 위해 매일을 자기 통제와 엄청난 노력 속에 살아갔을 것이다. 그녀의 경쟁을 조금이라도 이해볼 수 있을만한 영화. 공부와 운동도 잘하고, 예쁘기까지 한 피겨선수 언니와 언니를 닮고 싶지만 피겨선수에 어울리지 않는 통통한 몸과 엉뚱함으로 무장한 자유로운 영혼의 스텔라. 아이들의 무한 경쟁, 완벽주의, 식이장애와 몸의 문제까지 진지한 주제를 감동적으로 다룬 가족 드라마. 스텔라 역의 아역배우는 씩씩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연기의 완전체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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