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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2016 SIWFF 미리보기] 세계의 사랑을 영화로 쓰다

이번 [새로운 물결] 섹션을 프로그래밍을 할 때 내 손에는 몇 권의 책이 쥐어져 있었다. 벨 훅스의 『올 어바웃 러브』, 『사랑은 사치일까?』, 로라 킵니스의 『사랑은 없다:사랑의 절대성에 대한 철학적 반론』, 에바 일루즈의 『사랑은 왜 불안한가: 하드 코어 로맨스와 에로티즘의 사회학』등 네 권의 페미니스트들의 사랑론 저서와『제국』의 저자인 마이클 하트의 사랑론 등이었다. 여성을 가장 연약하고 무력하며 수동적인 위치에 놓이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면서 여간해서는 사랑을 입에 담지 않았던 페미니스트들이, 관용과 연대의 민주주의 담론을 논하던 포스트 맑시스트가 사랑을 설파하다니 무슨 일인가 놀라서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사랑이 카운터가 될 수 있을까, 그러다가 이들의 사랑론이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탈출구가 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점점 들게 되었다. 그리고 앞의 저서와 이론들은 [새로운 물결] 섹션 상영작을 선정하는 데에 일종의 프레임으로 작용했다.

페미니즘과 포스트 맑시즘에서 말하는 사랑론은 요약하자면 크게 세 가지로 나워볼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물결] 상영작 각각은 이들 사랑론에 대한 영화적 변주 들이다. 첫째는 무관심, 분노, 경멸, 혐오, 비하, 멸시, 천시, 증오를 넘어설 수 있는 치유로서의 사랑이다(벨 훅스의 관점). 벨 훅스의 사랑론은 그래서 여성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되는 페미니스트 자기 계발서에 가깝다. 

 

<네 명의 청춘들> 에사 일리, 2015, 핀란드                                                            <업 포 러브> 로랑 티라르, 2015, 프랑스

 

<책 속의 소녀> 마리아 콘, 2015, 미국                                                        <러브송> 김소영, 2016, 미국

 

둘째는 주로 영화나 소설 등 대중 문화에서의 사랑에 대한 재현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제기하는 사랑론이다. 이들은 낭만과 판타지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모순과 갈등으로서의 사랑을 주장한다. 이 주장에서 보면 성, 계급, 인종 차별 사회에서 사랑의 절대성은 허구이며 비밀과 거짓말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로라 킵니스와 에바 일루즈의 관점).

 

<그건 너, 바로 너> 사샤 고든, 2015, 미국                                                             <스톡홀름의 마지막 연인> 페닐라 오거스트, 2016, 스웨덴

 

 <유언> 제니 만 우, 2013, 중국                                                                             <여행> 파즈 파브레가, 2015, 코스타리카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 클라우디아 로렌츠, 2015, 스위스                                                                                                             

 

셋째는 동질성과 집단성을 전제로 한 연대와 관용이 아닌 집단과 집단 간의 그리고 집단내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함께 하는 존이구동(存異求同)으로서의 사랑(마이클 하트)이다. 이 관점은 한나 아렌트가 자신의 저서에 부제로 삼으려했던 "세계사랑", 즉 개인의 독자성과 집단의 다원성을 인정하면서도 공통성을 추구하는 아렌트의 사랑론과도 비교해 볼 수 있겠다. 

 

  <활동적 삶:한나 아렌트의 정신> 아다 우쉬피즈, 2015, 이스라엘                  <#봉기하라> 플로렌시아 로블리, 이호르 가마, 2014, 아르헨티나, 독일


작년 17회 영화제에서는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라는 주제의 쟁점 섹션이 있었다. 해당 섹션 초청작으로는 <분노할 때 그녀가 아름답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나는 페멘이다>,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 등이이었고, 해당작들은 연일 매진을 기록했다. 페미니즘의 물결이 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증오는 더욱 폭력성을 띠고 가감없이 직접적이며 어이없을 정도로 뻔뻔하게 드러나고 있다.  차별에 기반한 혐오의 토대 위에서 우리는 사랑을 말할 수 있을까...응답하라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