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요 : ながよ> 가 세상에 태어나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만나기까지
- 처음으로 밝혀보는 제작기 & 잊지 못 할 첫 경험
안녕하세요. 저는 <나가요 : ながよ>라는 영화로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첫 만남을 가졌던 차정윤입니다. 제 영화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아시아 단편경선 부문을 통해 처음으로 관객분들과 만났습니다. 제가 만든 영화가 영화제라는 공간을 찾게 된 것, 그로 인해 낯선 관객들을 만나게 된 것, ‘국제여성영화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국가의 여성감독님들을 만나게 된 것 모두가 제게는 ‘첫 경험’이었습니다. 지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의 시간을 떠올리면 한없이 소중하고 특별한 기억들로 가득 차서 다시금 가슴이 두근거리곤 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나가요 : ながよ>의 탄생기부터 간단히 짚어보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의 만남과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눠 보고자 합니다. 약 2년여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난날의 일기장을 뒤적여보고 나가요 제작노트를 들추어 보았습니다.
2015. 9. 11
새 시나리오를 썼다. 한 달 하고 조금 더 후인, 10월 말과 11월 초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주인공이 다현 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인데, 살아가려고 하는 의지가 강한 친구다. 우리는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으며, 무얼 하고 살아가든 어찌됐건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상태 그 자체는 참으로 귀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나가요 : ながよ> 와 함께 올 한 해가 마무리 될 것 같다.
2015. 9. 24
공개 통합 오디션 자리에서 문혜인 배우를 발견하다.
2015. 10. 29 ~
영화의 부제인 ‘기나긴 가을밤’에 맞춘 듯, 늦가을에 촬영 시작. 우여곡절과 함께 4회차의 촬영을 마치고 촬영이 중단됐다. 아, 이렇게 영화가 엎어지는 구나, 나는 망했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된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2015. 11. 21 ~
한 달여의 기간 동안 절치부심. 추가촬영을 해야 하는 씬들을 위한 준비작업을 마치고(세트 제작)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
2015. 11월 말.
크랭크업. 10월 말부터 11월 초에 본 촬영을 진행하고, 예정에 없던 추가촬영으로 인해 한 달 여 만에 촬영이 마무리 되었다, 내일은 서울에 첫 눈이 내린다고 한다. 다시금 내딛어야 하는 발걸음들이 무수히 많다. <나가요 : ながよ>를 준비하고 촬영하며 가을날들을 보내왔듯, 영화 후반작업을 하며 겨울날들을 보낸다.
2016. 1. 1
편집실 골방에서 편집을 하다가 새해를 맞았다. 근처 문 연 식당에서 혼자 떡국을 사 먹고, 다시 편집작업을 이어갔다. 한동안 갈피를 잡고 있지 못하던 작업이 과감한 삭제들을 통해 명확해지기 시작했고, 두 개의 씬을 통째로 드러내는 선택을 감행했다.
2016. 2. 15
광화문의 어느 오피스텔에서 후시녹음을 진행했다. 사운드 감독님과의 일정조율로 한 새벽에 홈 레코딩을 하게 되었고, 그 날 <나가요 : ながよ>의 엔딩 랩이 탄생했다. 혜인 배우가 목감기에 잔뜩 걸린 상태로 나타났지만 막상 녹음에 들어갔을 때엔, 감기에 걸린 티가 나지 않았다. 이것은 기적.
2016. 2. 19
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경선 부문에 출품을 했다. 편집만 완료된 상태였고, 음악과 믹싱, 색보정 등 아직 많은 후반 작업이 남아있는 상태다.
2016. 4. 8
서울국제여성영화제로부터 아시아 단편경선 본선작이 되었다는 전화 연락을 받았다. 고백하자면, 영화제에 출품을 하고 난 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연락처를 휴대폰에 저장해 두었었다. 영화제 측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을 때, 순간 심장이 쿵. 하면서 ‘혹시나?’ 했고 그 ‘혹시나’가 현실이 되었다.
2016. 4월 말.
영화의 최종 완성본이 나왔다. 드디어 끝이 났다.
2016. 5. 6
떨리는 마음으로 마스터링 파일을 뽑았고, 상영본 도착 마감일에 맞추어 여성영화제 측으로 상영본을 보냈다. 앞만 보고 계속 내달리기만 하다가 막상 끝을 내어 놓고 나니 마음이 허하고 묘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이렇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내심 바라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이루어질 거라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놀라움도 있었고 설렘도 있었습니다. 영화제가 열렸던 지난 2016년의 6월 2일부터 8일까지, 저는 매일 신촌을 찾았습니다. 쑥스러운 이야기이지만 <나가요 : ながよ>의 첫 상영 전날 밤에는 해가 뜨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고,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가 예정되어 있던 두 번째 상영 전날 밤에도 역시나 밤을 꼴딱 새고 영화제를 찾았습니다. 스크린 앞으로 나아가 처음으로 관객들 앞에 서는 순간, 주연을 맡은 문혜인 배우와 두 손을 꼭 잡고 섰습니다. 두렵고도 설레는 시간들을 보냈고, 벅차고 따뜻한 순간들이 제 안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일주일 간 열렸던 영화제의 막을 내리던 날, 제 영화가 그 날의 폐막작이 되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고 그저 놀람에 두 다리의 모든 힘이 풀려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수상소감을 했습니다.
<나가요>를 만드는 데에 8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 8개월 동안 너무 많이 울어서, 이제는 울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너무나 기쁘고 감사해서 눈물이 납니다. 나가요 는 제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져 있었을 때, 다시 일어서기 위해. 다시 앞을 보고 살아나가기 위해 만든 영화입니다. 오늘은 너무나도 기쁜 날이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제가 걸어 나갈 앞길이 그다지 밝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압니다. 영화 만드는 것은 힘들고, 어렵고, 늘 돈도 없고. 앞으로 수없이 많이 넘어지고 좌절할 테지만, 그 때마다 -다시 일어서라. 다시 일어서서, 또 다시 영화를 만들라는 의미로 이런 큰 것을 저에게 주시는 거라 생각하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는 타이페이에서 온 여성감독 루 미앤 미앤(<미드나잇 댄스>)과 인도 여성감독인 파얄 세티(<거머리>), 인도네시아 여성감독인 키키 페브리얀티(<차라라이>), 그리고 독일의 여성감독 베르나데테 크놀러(<휴일>)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아시아 단편경선 섹션에서 함께 상영을 하기도 했고, 새로운 물결 섹션에서 장편영화를 선보이기도 했던 감독들입니다. 영화제가 끝나고 헤어지면서 언젠가 다른 영화로 또 다시 함께 만나자는 약속을 했고, 저는 머지않은 미래에 그들을 만나러 타이완과 인도에 가기로 했습니다. <나가요 : ながよ>가 없었다면, 그리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없었더라면 모두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입니다.
살아오면서 맞이했던 수많은 ‘처음’의 순간들을 되돌아보면 늘 ‘첫 경험’만이 가져다주는 강렬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이기 때문에 예상하기 어렵고, 상황에 대응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저 그 때 그 순간마다 나에게 주어진 것과 찾아오는 것들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때. 그런 저의 첫 경험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또 행복한지 모릅니다. 하루 종일 이 곳 저곳을 한참 걸어 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갑자기 모든 긴장이 일순간 해제되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밖에 있는 동안 나의 몸에 이렇게나 강한 힘을 주고 있었구나.’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지요. 은연중에 긴장을 했을 수도 있고 세상의 어떤 것들로부터 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힘을 주고 다녔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성영화제가 열렸던 그 기간 동안의 저는 매우 평온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멋진 여성들로 가득한 곳, 내 오른쪽에도 그리고 왼쪽에도 든든한 여자‘친구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아마 머리보다도 몸이 먼저 반응하고, 안온함을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언제나 외롭고도 지난한 여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과 같은 시대를 공유하고 있는 동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커다란 힘이 됩니다. 많은 수의 스탭분들과 배우분들과 함께 <나가요 : ながよ>를 만들어 냈던 약 8개월의 시간동안 무던히 외롭고 고단했지만, 영화가 완성되고 여성영화제를 만나면서 - 제가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그 같은 시간대에, 나와 비슷한 다른 여성감독님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간을 보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때 서로 ‘너무 바빠서 만나지 못했을 뿐, 같은 길을 함께 걷고 있었구나.’ 하는 동지애, 동료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제가 끝나고, 약 두 달 여 후인 지난해 8월에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정기상영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상영의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간 단편영화로써 단독 GV자리를 갖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는데, 덕분에 보다 깊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았습니다. 이후에 여러 좋은 자리에서 몇 번의 상영이 더 있었고, 새해를 맞은 요즈음의 저는 새로운 이야기 작업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올 2017년, 제 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열리는 자리에 많은 기대와 애정을 갖고 한 사람의 관객으로 영화제를 찾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꿈을 꾸게 됩니다. 좋은 영화로 다시 한 번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관객분들을 만날 수 있다면,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동료 여성감독님들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해봅니다.
좋아하는 책의 어느 한 구절을 빌어 마지막 소회와 함께 글을 마칠까 합니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그들이 형성하도록 도와준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 준 사람의 모습으로 사는 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그들을 존경하는 방법이다.’ <나가요 : ながよ>라는 영화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통해 만나게 된 모든 존재들을, 저는 ‘존경’합니다. 그 존재들이 형성하도록 도와준 제 모습은, 그 이전의 나보다 훨씬 단단한 긍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여자라는 것과 내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좋은 것이구나,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차정윤 (<나가요 : ながよ>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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