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 영화의 성평등, 성평등 영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지난 몇 년 동안 ‘성평등 영화’ 라는 아젠다를 개발하고 연구하면서 올해에는 (사)여성영화인모임과 함께 정책포럼을 통해 발언하고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포럼을 기획하는 등 여러 방향으로 그 의제를 확장하고 영화산업에서의 성 불평등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영화인들 스스로 갖도록 호소해 왔다. ‘사실상 현재상황, 즉 오로지 인구의 절반만이 스토리를 말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자각과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인식을 올바로 하는 것 이상 다른 출발점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안나 세르네르, 제 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포럼, ‘스웨덴 여성영화의 평등한 힘-영화는 성평등할 수 있는가?’ 자료집에서)평소에 한국영화 제작비율 중 50% 이상이 여성감독의 여성 주인공인 영화로 채워진다면 여성영화제는 그 역할을 다했으므로 사라질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전 세계 영화산업은 ‘누가 영화를 만드는가와 누구를 어떤 방법으로 묘사하는가’ (테레즈 마르틴손) 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커다란 성적 불평등, 즉 젠더 갭을 드러내고 있다. 2015년 제 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감독,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라는 세 전문 분야에서 국가 지원 펀딩이 여성과 남성 50 대 50으로 각각 할당되도록 하는 ‘2013 영화협정’을 발표한 스웨덴을 주목하고 이들을 초청하여 국제포럼을 주최한바 있다. 이런 성평등에 기반한 영화정책은 세금의 절반을 여성이 내고 있으므로 세금으로 운영하고 집행되는 국가의 영화지원액 중 절반을 여성에게 할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영화를 비롯한 예술에 대한 신비주의와 남성 전문가주의를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새롭게 빚기 위해서는, 그 민주 사회를 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예술이자 ‘도구’ 중 하나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 쪽 성이 일방적으로 그 민주주의의 예술이자 ‘도구’를 차지하고 있기에 훼손당한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갱신하기 위해서는, 평등을 향해 변화해 나가야 한다. 그 자리가 상업, 흥행,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영역이 아니라 세금의 공정한 집행을 목적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영역이라면 할만 하지 않은가.
촛불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다.
지금의 정부가 이전 진보정권의 복사판이 아니라 업그레이드 판이라는 걸 증명하려면 영화를 비롯한 문화예술의 성평등 정책은 현 정부의 지금 당장의 액션 플랜이 되어야 한다. ‘비전2030’ 이니 ‘시민’ 등의 보편의 이름으로 여성과 소수자를 지우는 칼로리 제로 문화정책을 당장 중단하고 성인지적 관점에서 모든 영화정책과 공적 영화 기금의 분배를 분명히 내세우길 바란다.
성평등 영화정책을 관철시키고 성평등 영화환경을 이루기 위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노력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며, 지난 1년 동안 들었던 ‘말도 안 되는 택도 없는 이야기’이자 ‘기계적인 시도’이며 ‘심사위원이나 결정권자를 할만한 여자 자체가 없다’는 그 말들이 바로 말도 안 되는 구시대적인 적폐라는 점을 그들이 깨달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행할 것이다.
김선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수석프로그래머)